삼성전자가 광주를 차세대 반도체 생산 거점 후보지로 검토하고, 구미에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피지컬 AI, 울산에는 전고체 배터리, 충청권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첨단 패키징 공정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장기 투자 청사진을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첨단산업 지도가 그려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단순한 투자 계획으로만 볼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실제 성공 여부는 반도체 공장 건설보다 더 근본적인 **전력과 용수 확보**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반도체 산업은 흔히 AI와 첨단 장비 경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생산 현장에서는 안정적인 전기와 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도 이번 발표에서 투자 판단 기준으로 **전력, 용수, 인력, 인프라**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웨이퍼를 수백 차례 세척하는 과정에서 불순물이 거의 없는 초순수(Ultra Pure Water)를 사용한다. 초순수는 일반 수돗물을 여러 단계 정제해 만드는 물로, 대규모 생산라인은 하루 수만 톤에서 많게는 수십만 톤의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충분한 산업용수 확보는 반도체 공장 입지 선정의 필수 조건이다.
광주와 전남은 영산강·섬진강 수계와 주암댐, 동복댐, 평림댐 등을 통해 생활용수와 산업용수를 공급받고 있어 평상시에는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2022~2023년처럼 장기 가뭄이 발생하면 저수율이 크게 떨어져 절수 대책을 시행한 사례도 있다. 즉, 현재의 용수 체계만으로 대규모 첨단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이 댐과 보(洑)다.
4대강 사업 이후 보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댐과 보는 역할이 다르다. 댐은 대량의 물을 저장해 생활용수와 산업용수를 공급하는 핵심 시설이며, 홍수와 가뭄 대응 능력도 갖춘다. 반면 보는 강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해 취수를 쉽게 하고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공급을 돕는 시설이다. 산업용수 확보 측면에서는 댐이 중심 역할을 하고, 보는 이를 보조하는 기능을 한다.
보는 가뭄 시 일정량의 물을 확보하고 취수 안정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녹조 발생과 생태계 변화, 퇴적물 증가 등의 문제가 제기돼 왔다. 현재 국내외 전문가들은 ‘철거’와 ‘유지’라는 이분법보다 수문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수질과 생태를 함께 관리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최근에는 바닷물을 산업용수로 활용하는 해수 담수화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대만 TSMC는 2021년 극심한 가뭄 당시 정부와 함께 해수 담수화 시설과 용수 재이용 시스템을 확대했다. 싱가포르는 담수 자원이 부족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해수 담수화와 하수 재이용(NEWater)을 국가 핵심 인프라로 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부산과 울산, 여수, 포항 등에서 해수 담수화 기술을 운영하고 있지만, 담수화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결국 물을 만들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선행돼야 한다.
전력 문제 역시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과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하루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운영된다. 순간적인 정전만으로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생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발전원별 특성을 보면 원자력은 탄소 배출이 적고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해 반도체 산업에 가장 적합한 전원으로 평가된다. LNG 발전 역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지만 연료를 수입에 의존한다.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친환경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크게 변동하는 한계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운영을 위해 원전 전력을 장기 구매하거나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AI 시대의 경쟁력이 결국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현실화된다면 단순히 공장만 건설해서는 안 된다. 초고압 송전망 구축과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 산업용수 공급망, 초순수 생산시설, 용수 재이용 시스템, 필요 시 해수 담수화 시설까지 종합적인 국가 인프라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권 변화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규모 첨단산업 프로젝트는 정치보다 경제 논리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실제로 평택 반도체단지와 용인 국가산업단지 등은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다만 아직 후보지 검토 단계인 사업은 향후 글로벌 반도체 경기와 기업 실적, 정부 지원, 전력과 용수 확보 여부 등에 따라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번 삼성의 투자 발표는 단순히 광주에 공장을 짓겠다는 선언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 전략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I와 반도체 경쟁력은 첨단 기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전기와 물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운영하느냐가 앞으로 10~20년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