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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 정기용씨, 뒷쪽 이영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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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맥 포럼]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 “내가 만난 사람, 「오적(五賊)」 시인 김지하”

한국인은 누구나 시를 좋아한다. 누구나 시를 쓴다.

3월 포토맥포럼 정기강연회에서는 ‘내가 만난 사람 시인 김지하’에 대해 전 한민신보 발행인 정기용씨가 강연 했다.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등으로 유명한 김지하 시인과 선후배 관계로 지낸 정기용씨는 김지하 시인과의 관계를 전하면서 때로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에 강연을 멈추기도 했다. 강연을 한 정기용씨는 당뇨로 시력을 잃었지만 뛰어난 기억력으로 강연을 이어 나갔다.

정기용씨

정기용씨는 청산별곡을 말하며 시로 역사를 서술했다.

정몽주의 모친은 까마귀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며 이방원 과의 만남을 말렸고 정몽주는 이방원과의 만남에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 번 고쳐 죽어 라는 시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며 김지하 시인도 격동기에 시를 써서 더욱 유명 해 졌다. 시중에 여러가지 시가 있지만 성남시는 시가 아니다. 라며 풍자의 말을 하기도 했다.

김지하시인은 목포시에서 아버지 김맹모와 어머니 정금성의 외아들로 태어났고 원주에서 원주 중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유학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하였고 서울대학교 재학중 4.19와 5.16등을 겪었고 수감과 도피의 생활을 이어갔다. 김시인은 허균의 홍길동전과 유사하다며 동키호테에 비유하기도 했다.

정기용씨는 김지하시인과의 처음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때 김시인이 고2때 이며 선배 대접을 철저히 했고 김시인은 술만 먹으면 자신은 빨치산 출신이라고 했다며 고모의 영향으로인해 반정부 인사가 됐다고 했다.

원주에서 부친은 명륜극장에서 간판을 그리고 영사기를 돌리는 일을 했고 덕분에 친구들은 영화구경을 공짜로 자주 봤다고 했다. 김시인은 서울대 재학시절 새새대 신문제작에 관여하여 도망자 신세가 되고 후에 잡혀서 재판을 4월8일 받고 사형선고 후 4월9일에 사형을 집행 하도록 되었으나 세계각처에서 구명운동을 하여 탄원서등을 보내 무기로 감형받고 외부연락이 단절된 채 독방 수감 생활을 오래 하여 폐쇄공포증에 걸렸다고 했다.

정기용씨는 타는 목마름 시집에 대해 말하다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시인의 시에는 민중사상이 깃들여져 있었으며 영혼이 담겨 있었다. 또한 김지하를 돕는 모임도 생기고 노벨상 후보에 올라갈 수도 있었으나 정보부의 방해로 받지 못하고 여러가지 상을 받기도 했다.

김시인은 원주에서 수해 봉사를 하던 중 정일순여사를 만나고 천주교로 입적하게 되고 지학순 신부를 만나고 박경리씨의 사위가 왰다. 김시인은 생명보호 운동을 했고 고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되었으나 마지막말은 사람은 죽을 때 말을 남긴다는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김지하 시인의 대표작품은 오적, 새, 황톳길, 타는 목마름으로 등이 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이태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