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LG 트윈스는 빠른 속도로 강팀 대열에 올라섰다. 1990년과 1994년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1997년과 1998년 아쉽게 준우승을 했다. 9시즌 동안 6차례 포스트시즌을 치렀고, 그 중 4차례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LG는 기나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우승은커녕 2002년을 끝으로 한국시리즈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10시즌 연속 가을야구 탈락을 경험했고, 2013년부터 2022년까지 꾸준하게 포스트시즌에 나섰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반복된 실패의 시간이 무려 29년이나 흐른 뒤에서야 LG는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LG 팬들 입장에서는, 참 오래 걸렸다.
LG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KT 위즈에 6-2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했다.
29년 만에 쌍둥이 군단의 우승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LG 팬들은 우승이 확정되자 뜨거운 함성을 터트렸다. LG 선수단도 일제히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하나로 뭉쳐 크게 기뻐했다.
LG가 우승을 위해 쏟은 29년은 KBO리그에서 가장 오래 걸린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02년 LG를 꺾고 17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가 보유하고 있었다.
LG는 시즌 초반 디펜딩 챔피언 SSG 랜더스, ‘톱데(선두 롯데)’ 돌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와 6월 초까지 3강을 형성하며 치열한 1위 경쟁을 펼쳤다.
순위는 높았지만 행보는 불안했다. 마운드부터 이상신호가 났다. 믿었던 에이스 케이시 켈리가 흔들리며 교체 루머에 휩싸였고, 3·4선발로 낙점한 김윤식과 이민호가 각각 부진과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마무리 투수 고우석도 어깨, 허리 통증으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타선의 중심을 잡아야 할 오지환과 김현수도 5월 들어 부진의 터널에 갇혔다.
그러나 LG는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았다. 아담 플럿코와 임찬규가 선발진의 기둥이 됐고, 박동원은 5월에만 9개의 홈런을 치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우석과 정우영이 주춤한 불펜 역시 김진성, 함덕주, 박명근, 유영찬 등이 대단한 활약을 펼쳐 든든하게 뒷문을 지켰다. 만년 후보이던 신민재는 타격과 주루에서 만개하며 LG의 고질적 불안 요소인 2루수를 말끔하게 해결했다.
6월27일부터는 줄곧 1위 자리를 지키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LG는 정규시즌에서 팀 타율(0.279)과 평균자책점(3.67) 모두 1위에 오르는 등 투타 조화 속에 압도적 힘을 과시했다. 염 감독이 지향하는 뛰는 야구도 LG에 날개를 달게 했다. LG는 144경기에서 267회나 도루를 시도해 166차례 성공했다. 도루 실패도 101개나 됐지만 염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격적 베이스러닝을 주문, 작전 야구를 상대를 몰아붙였다.
정규시즌 우승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는 손쉽게 우승하는 듯 보였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는 데다 KT가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혈투를 펼치고 올라와 LG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예상은 깨졌고, LG는 한국시리즈 초반부터 KT와 피 말리는 승부가 펼쳐졌다. LG는 1차전에서 실책 3개를 범하고 고우석이 무너져 쓴맛을 봤다. 2차전과 3차전에서도 막판까지 밀려 패색이 짙기도 했다.
그러나 LG는 2차전에서 8회말 박동원의 역전 투런포로 짜릿한 5-4 승리를 거뒀고, 사실상 한국시리즈 우승의 향방을 결정한 3차전에서도 오지환이 9회초 2사에서 극적인 3점 홈런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흐름을 바꾼 LG는 4·5차전에서 타선이 불을 뿜으며 KT 마운드를 공략, 우승까지 필요한 남은 2승을 채웠다.
야구계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하늘의 뜻에 달렸다”는 격언이 있다. LG가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뭔가 특별한 힘이 있었다. 염 감독은 “선수단과 팬들의 절실함, 그리고 행운이 하나로 모여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이상철 기자 rok1954@news1.kr <기사제공 = 하이us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