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대회 수익금 기부부터 한국문화엑스포, 디카시 공모전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류 사회에 한국의 정신 심어온 삶”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 ‘아메리카 250 디카시 공모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병석 전 Pitt County 인권위원을 만났다.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서 오랜 시간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주류 정계 및 지역 사회와 깊이 교류해 온 그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한국의 신생 문학 장르인 ‘디카시(Dica-Poem)’를 미국 사회에 당당히 선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Q1. 지난 5월 ‘아메리카 250 디카시 공모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셨습니다. 한국의 문학 장르인 ‘디카시’를 미국 주류 사회에 소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NC America 250 측에서 제가 소속된 Pitt County 인권위원회(Human Relations Commission)에 에세이 공모전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 독립 25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축제야말로 디카시를 주류 사회에 알릴 최고의 기회라고 판단해 역제안을 건넸습니다.
당시 위원들은 디카시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결국 에세이로 결정되는 우여곡절도 겪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독립 250주년은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는 축제여야 하며, 역사적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5줄 이내의 시로 감동을 담아내는 디카시야말로 이에 가장 부합하는 형식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PPT를 다시 준비해 위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마침내 추진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카운티의 재정 지원이 어려워 직접 후원자를 찾아다녀야 했지만, 한국에서 시작된 디카시가 미국의 가장 상징적인 국가 행사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큰 자부심을 갖고 추진했습니다.
Q2. 현지 미국인 참가자들의 반응이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모든 작품이 개성 있었지만, 특히 중·고등학생들의 시선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국의 정체성과 애국심을 진솔하게 표현했더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15세 학생 케일럽 무어(Caleb Moore)의 디카시였습니다. 천둥번개에 찢긴 나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표현하면서도, 자신 역시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일부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비록 수상작은 아니었지만 제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입니다. 문학적 세련미를 넘어 한 사람의 삶과 마음을 세상과 연결하는 디카시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Q3. 이번 공모전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기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디카시가 영어권 전역으로 확산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주지사실, 주 상·하원 의원, 20여 개 대학과 교육청 등을 직접 발로 뛰며 디카시를 설명해야 했습니다.
미국 사회에 이미 친숙한 일본의 ‘하이쿠’와 달리, 한국의 디카시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장르라는 이유로 선뜻 수용하기를 망설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정신적·재정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앞으로 대학과 교육청을 중심으로 보급을 지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비록 재정적 한계는 있으나, 더 많은 기관과 후원자가 뜻을 모아 미국 사회에 디카시가 새로운 문화로 뿌리내리기를 기대합니다.
Q4. 오랜 기간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현지 주류 사회와 깊은 교류를 이어오셨습니다. 태권도가 한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태권도는 단순한 무술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외교 수단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지역 컨벤션센터를 대관해 6년간 ‘한국문화엑스포’를 개최했습니다. 정부 지원이 미미했던 시절이라 역사, 관광, 전통 교육, 한복·한식 체험 등 모든 전시를 사비로 준비했습니다. 지역에 한식당이 없어 아내와 한인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었고, 전통 풍물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전북 임실군의 풍물팀을 초청해 한 달간의 숙식을 전액 부담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진정성이 쌓이면서 현지 정치인 및 지도자들과 깊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Q5. 미국 주류 정계가 바라보는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 변화를 체감하시는지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제 현지 정치인들이 먼저 한국 방문을 희망하고, 한국의 경제 성장과 K-컬처의 영향력을 부러워하며 높이 평가합니다. 과거에는 한국을 잘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면, 지금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이자 문화 강국으로 인식하고 있어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되고 있습니다.
Q6. 이임순 여사님과 함께 오랜 시간 지역 봉사와 나눔을 실천해 오신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아시아계 인구가 극히 적은 미국 남부 지역에 처음 정착했을 때부터,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저희 부부가 나눔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한국인으로서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외된 존재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주역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몇 년 전 부당한 대우를 받은 한인 청소년을 위해 검사장을 직접 찾아가 항의하고 문제를 해결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현지 사회가 한인들을 존중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7. 이민 사회의 후배들과 차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인 거창한 꿈은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이자 동시에 미국 사회의 당당한 시민입니다. 후배들에게 늘 미국 주류 사회 속에서 비주류로 머물지 말고, 아시아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조언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고 시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곧 고국의 명예를 높이는 길입니다. 우리의 삶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가질 때, 다음 세대는 더 큰 자부심을 품고 이 땅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임순 여사 추가 인터뷰]
Q. 태권도 도장 운영부터 한국문화엑스포, 디카시 공모전까지 오랜 시간 묵묵히 내조해 오셨습니다. 가장 보람찼던 순간과 여사님께 남편 이병석 위원장은 어떤 의미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가장 보람찼던 순간: 3,000명이 감동한 ‘한국문화엑스포’ 이민 초창기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은 한국이라는 나라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인 문화적 황무지였습니다. 남편은 그곳에서 태권도 대회 수익금으로 소아암 환자와 열악한 지역 학교를 후원하며 평생을 바쳤습니다. 비록 우리 주머니는 가벼워질지라도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의 삶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자비를 들여 개최했던 ‘한국문화엑스포(Korea Culture Expo)’입니다. 한복·전통놀이·산업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알린 행사였습니다. 당일 3,000명이 넘는 관람객과 150여 명의 봉사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불고기, 잡채, 김치를 손수 준비했습니다. 몸은 무척 고되었지만, 한국 음식에 감탄하며 문화를 즐기는 현지인들을 보며 모든 수고가 큰 기쁨과 보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과 같은 꿈을 품고 고국을 알리며 지역 사회를 섬길 수 있었던 그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 내 남편의 의미: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자 존경하는 멘토 미국에서 살아온 세월 동안 남편이 없는 삶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이야기를 늘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언제나 저를 믿고 응원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기둥입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누군가를 돕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면 언제든 남편과 손을 맞잡고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가장 큰 선물이며, 남은 생애도 지금처럼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윤영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