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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탈북 희생자의 넋을 기리다… 클로스터 탈북민 추모비 건립 1주년 기념식 성황리 열려!

“북한 인권의 어머니 마영애 총재, 이제는 국제사회가 더 큰 ‘인권상’으로 그녀의 헌신에 응답할 때”
– 서울, 하와이, 캐나다, 영국 등 전 세계 인권 활동가 및 미 주류 정치인 대거 참석 – 핍박과 방해 뚫고 세운 해외 최초 탈북민 추모비, 북한 인권 개선의 세계적 이정표로 우뚝 – 탈북민 자립부터 구출, 장학 사업까지… 마영애 총재의 삶 자체가 ‘살아있는 인권상’수상대상자이다.

지난 7일(화) 오전 11시,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클로스터의 헤링턴 에브뉴와 니커보커 로드 교차로 소공원은 엄숙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었으나 끝내 스러져간 1만여 명의 탈북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탈북민 추모비’가 건립 1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이날 기념식은 단순한 추모 행사를 넘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재확인하는 거대한 장이었다. 행사를 주도한 국제 북한 인권 연맹(총재 마영애)을 중심으로 한국의 탈북민 총연합중앙위 회장단(이은택 사무총장 등), 캐나다 탈북민 총연합회(김철수 회장), 하와이(허상기 박사), 워싱턴, 영국의 인권 활동가들이 대거 참석해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미국 주류 사회의 높은 관심이 눈길을 끌었다. 뉴저지주 로버트 어스 주하원의원, 죤 글리든 클로스터 시장 및 시의원들, 뜻깊은 장소를 제공한 땅 주인 대니 위거스 씨, 워싱턴 북한인권위원회(HRNK) 그렉 스칼튜 회장 등 귀빈들이 자리했다. 동포사회 진보 활동가로 알려진 정영민 목사가 유창한 영어로 사회와 통역을 맡아 미국인 참석자들의 깊은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다.

■ “눈물로 세운 1년”… 마영애 총재의 초인적인 헌신
해외 최초의 탈북자 추모 사업인 이 추모비는 그 건립 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자 치열한 인권 투쟁이었다. 서울에서 제작되어 지난해 4월 7일 뉴욕 항에 입항한 추모비는, 일부 반북 성향 단체와 개인의 끈질긴 방해와 음해, 민원 제기로 인해 크나큰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7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클로스터의 땅에 우뚝 설 수 있었다.

마영애 총재는 이날 기념사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당시의 소회를 전했다. 마 총재는 “숱한 방해 속에서도 국제 북한 인권 연맹 핵심 멤버들과 뉴욕·뉴저지 구국동지회, 지역 한인회, 공무원, 미 정치인들, 그리고 참전용사 후손인 대니 위거스 씨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기적처럼 1주년을 맞이했다”며, “이 추모비는 북한 내부에서 고통받는 2천5백만 동포의 인권 회복과 국제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지워지지 않는 이정표”라고 역설했다.

이날 단상에 오른 미국 인사들 역시 연설을 통해 마 총재의 초인적인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전폭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 왜 ‘마영애’에게 국제 인권상이 수여되어야 하는가
이번 1주년 행사를 계기로 미주 동포사회와 국제 인권계 일각에서는 **”이제는 국제사회가 권위 있는 ‘인권상’을 통해 마영애 총재의 헌신에 화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신분을 숨긴 채 떠도는 탈북민은 30만~40만 명에 달하며, 탈출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강제 북송 후 처형된 사례만 무려 1만 건에 이른다. 마 총재는 이들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해왔다.

2001년 탈북 후 2004년 미국에 정착한 그녀는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미 전역을 돌며 1,800회 이상의 집회를 열어 북한의 실상을 증언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가 단순한 활동가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스 코리안 소세지를 설립해 ‘평양순대’ 브랜드를 성공시키며 미주 30여 개 거래처와 워싱턴 아난데일 지점까지 확장한 강소기업의 CEO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기업의 수익 대부분을 탈북자 구출과 장학 사업에 쏟아부으며 ‘자립형 인권 운동’의 완벽한 롤모델을 제시했다.

2007년 ‘미주 탈북자 선교회’, 2015년 ‘국제 탈북민 인권연대’ 설립에 이어, 2024년 8월 14일에는 마침내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비영리단체(501(c)(3)) 지위를 공식 승인받아 단체의 공신력을 확고히 했다. 도전 한국인 운동본부의 ‘국제 인권상’과 탈북민 최초 한미동맹 70주년 여성포럼 연맹 평화상 수상은 그녀의 업적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 미 주류 정치계를 움직이는 탁월한 외교력
마 총재의 영향력은 미국 최고위층까지 닿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각별한 인연이 그 증거다. 2021년 마라라고 별장에 초청받아 2시간 동안 독대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워싱턴 갈라에서는 헤드 테이블 호스트로 나서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서 마 총재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친구’라 부르는 것은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깊은 전략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해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외교적 식견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피와 땀, 개인의 재산까지 모두 바쳐 1만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살아있는 탈북민의 생명을 구하고 있는 마영애 총재. 그녀의 삶 자체야말로 그 어떤 훈장보다 빛나는 ‘인권의 상징’이다.

이날 행사는 뉴욕·뉴저지 재향군인회 회원과 참전용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탈북 무용수 최신아 씨의 애절한 ‘살풀이’ 공연으로 절정에 달했다. 탈북 희생자들의 처절한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한 처연한 몸짓에 참석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행사 말미, 마 총재는 멀리서 찾아온 귀빈들과 동포들에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영애 순대’가 담긴 정성 어린 도시락을 나누며 감사를 표했다. 그 따뜻한 도시락 안에는 북한 동포들을 향한 그녀의 식지 않는 사랑과, 평화 통일을 향한 꺾이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세계 유수의 인권 단체와 기구들이 마영애 총재의 이름에 주목하고, 그에 걸맞은 영예로운 ‘인권상’으로 그녀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어야 할 때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이태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