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성은 여전히 높게 평가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반도체 기업에 투자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는 현상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블랙록은 최근 신흥시장(EM)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기존 ‘비중확대(Overweight)’에서 ‘중립(Neutral)’으로 낮췄다. 보고서는 한국과 대만처럼 AI 관련 기업의 비중이 높은 시장은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졌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은 TSMC가 증시 상승을 주도하면서 시장 전체가 반도체 업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블랙록은 “같은 AI 가치사슬에 속한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분산 투자하더라도 위험이 충분히 분산되지 않을 수 있다”며 특정 산업에 집중된 시장의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증시에서도 AI 투자 흐름에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까지 시장을 이끌었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M7)’ 기업들은 AI 투자 비용 증가에 대한 우려로 최근 주가가 약세를 보인 반면, 반도체와 저장장치 등 AI 인프라 기업들은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자들이 AI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보다 GPU와 메모리, 저장장치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자금이 반도체 업종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올해 상반기 큰 폭의 상승세를 기록했으며, 일부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수 배 이상 뛰었다.
반면 월가에서는 또 다른 위험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증권사의 마진론 잔액은 약 1조4천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관련 2배·3배 레버리지 ETF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레버리지 ETF의 특성상 상승장에서는 추가 매수, 하락장에서는 추가 매도가 반복되기 때문에 가격 변동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최근 한국 증시에서도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레버리지 투자 자금이 집중되면서 급격한 변동성이 나타났고, 이러한 사례가 미국 시장에서도 경고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투자 자금이 특정 종목과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예상보다 큰 조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장기 투자에서는 반도체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으로 분산 투자하고, 레버리지 상품은 높은 위험성을 충분히 이해한 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여전히 AI를 미래 성장 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만 최근 블랙록과 월가의 잇따른 경고는 AI 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업과 산업에 지나치게 집중된 투자 구조가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는 수익률뿐 아니라 위험 관리와 자산 분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