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Featured재외국민뉴스

재외국민도 활용 가능한 주택연금, 상속 탓에 외면…”고령층 자산 유동화 위한 제도개선 시급”

“주택연금 가입하면 숨통은 트일 것 같은데… 자식들 생각하면 망설여지네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강모(67) 씨는 최근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주택연금(역모기지) 가입을 고민 중이다.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 시세는 약 6억 원. 국민연금 외에 별도 소득이 없는 그는 주택을 담보로 매달 약 150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집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있다.

주택연금은 만 55세 이상 고령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생활자금을 받는 제도다. 2007년 도입된 이후 18년이 지났지만, 가입률은 여전히 전체 대상자의 1%대에 머물고 있다. 올해 2월 말 기준 누적 가입자는 약 13만8000명에 불과하다.

▶ 재외국민도 활용 가능한 주택연금… 현실은 ‘눈치 보기’
미국 시민권자인 김모(72) 씨는 한국 국적도 함께 보유한 이중국적자다. 30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는 은퇴 후 한국으로 귀국해 서울 마포구에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고 현재 거주 중이다. 김 씨는 미국에서 받은 사회보장연금(SSA)만으로는 한국 생활비가 빠듯해, 주택연금 가입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보다 병원비도 싸고 생활도 익숙해서 돌아왔어요. 그런데 물가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이 집으로 연금 받으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미국에 있는 아들·딸이 ‘집은 놔두고 살아야지 왜 담보를 잡히느냐’고 반대해서 망설이고 있어요.”

김 씨처럼 재외국민이나 이중국적자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주택연금 가입이 가능하다. 한국에 주민등록을 두고 실거주하며 국민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등록된 상태에서 주택 보유 기준을 충족할 경우, 일반 내국인과 동일하게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양국의 세금 문제나 상속 문제도 염두에 둬야 하고,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연금 수령 시 해외금융자산 보고(FBAR, FATCA) 대상이 되는지도 복잡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재외국민 고령층 역시 한국 내 부동산을 활용한 노후 준비에 관심이 많지만, 자녀의 정서적 반대나 이중 과세 우려, 문화적 요인 등으로 인해 주택연금 가입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뿌리 깊은 ‘상속 문화’가 최대 걸림돌
전문가들은 고령층의 낮은 주택연금 가입률 배경에는 뿌리 깊은 상속 문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주택금융공사가 2022년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택연금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높은 응답은 ‘자녀에게 상속하기 위해서’(54.4%)였다. 이어 ‘월 지급액이 적어서’(47.2%)가 뒤를 이었다.

강 씨처럼 자녀를 고려해 결정을 망설이는 사례는 적지 않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70) 씨는 노후생활비가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집을 담보로 맡기면 아들 부부가 싫어할 것 같다”며 주택연금 가입을 포기했다.

수도권 집중·낮은 수익률·제도 신뢰도도 문제
가입자의 지역 분포를 보면, 전체의 약 66%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는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수령액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2020~2021년 부동산 급등기에는 기존 가입자들이 연금 수령을 중단하고 집을 매각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당시 해지 후 주택을 매각한 가입자 비율은 46.3%에 달했다. 이로 인해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노후 빈곤 해결 위한 제도 개선 시급”
국민연금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한국의 고령층 구조를 고려할 때, 주택연금 활성화는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수단”이라며 “제도 개선을 통한 가입자 확대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특히 △월 지급액 상향 △가입 조건 완화 △저가주택 보유자 우대혜택 강화 △세제지원 확대 △공시가격 제한 폐지 △주택 가격 연동 상품 설계 등을 주요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현재 일부 시행 중인 ‘우대형 주택연금’의 경우, 시가 2억5000만 원 이하 주택 보유자에게 최대 20% 추가 연금을 지급하지만, 기초연금 수급 요건이라는 장벽이 존재한다. 이 요건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또한 고령 가구가 큰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옮기는 ‘주택 다운사이징’ 제도를 활성화하고, 차익을 연금계좌에 예치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상속과 노후준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는다.

가입률 높이면 GDP·빈곤율 개선 효과
한국은행 관계자는 “주택연금 가입자 수가 증가할 경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0.7%포인트 상승하고, 노인 빈곤율은 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 설계와 정보 제공, 세제혜택 확대 등의 방안이 병행될 경우, 가입 의향이 5~7%포인트 증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박모(69) 씨는 “아프고 나니 아이들 눈치보다 내 건강이 더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며 “주택연금 덕에 지금은 병원도 부담 없이 다니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주택연금은 ‘노후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집은 자식에게’라는 오랜 관념을 넘어서야 할 때다.

재외국민신문(hiuskorea.com) 강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