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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역행하는 선관위] “쓰레기통 직행”…수백억 세금 태우는 종이 공보물 언제까지

선거를 앞두고 우편함에 두툼하고 묵직한 봉투 하나가 억지로 구겨 넣어진 듯 꽂혀 있었다. 지방선거 선거공보물이었다. 혹시나 새로운 내용이 있을까 싶어 펼쳐보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SNS와 유튜브, 포털 뉴스, 언론 보도를 통해 수없이 접한 후보들의 얼굴과 공약이 대부분이었다.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종이 뭉치뿐이었다.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넣는 것조차 번거로웠고, 결국 이 무거운 종이 더미를 처리해야 할 환경미화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문제는 이것이 필자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수천만 가구에 배달된 선거공보물이 상당수 개봉조차 되지 않은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있다. 아파트 우편함 아래에는 버려진 공보물이 수북이 쌓여 있고, 주민들은 우편함에서 꺼내자마자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선관위는 여전히 “유권자의 알 권리”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이미 달라졌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대한민국에서 후보자의 공약과 재산, 전과 기록, 정치 이력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선거운동 영상과 토론회 역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수십 년 전 방식 그대로 막대한 종이를 인쇄해 전국에 뿌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용이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보물 발송 비용만 약 299억 원이 투입됐다. 인쇄비와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실제 비용은 훨씬 크다. 올해 역시 수백억 원의 국민 세금이 같은 방식으로 사용됐다. 국민들은 고물가와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정작 국가기관은 읽히지도 않는 종이 홍보물에 거액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환경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제작된 공보물은 약 5억8000만 부에 달했다. 이를 생산하기 위해 수십만 그루의 나무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탄소중립과 ESG를 외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막대한 종이를 인쇄하고 폐기하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정부와 선관위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낡은 관행 중 하나가 바로 선거공보물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국민에게 종이 공보물을 강제로 배달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원하는 사람에게만 종이 공보물을 신청받아 제공하고, 나머지는 문자메시지, 이메일, 모바일 앱, QR코드 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 이미 은행, 보험사, 정부기관조차 전자문서를 기본으로 사용하는 시대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세금 사용의 효율성과 시대 변화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수백억 원의 세금을 들여 대량 생산된 공보물이 결국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현실은 명백한 행정 낭비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행정을 강요하는 선거공보물 제도는 이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종이를 태우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하이유에스코리아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