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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장사 소녀에서 미주 한인사회의 어른으로… 김혜일씨 별세

미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혜일 ( Lily Kim Hale) 전 미주한미여성회총연합회 이사장이 향년 86세로 2026년 1월 3일 별세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김 회장은 최근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귀가한 뒤 독감 증세로 의사와 상담을 받았으며,  3일 오후 2시경, 딸이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플로리다 네이플스 자택을 찾은 가족에 의해 별세 사실이 확인됐다.

김 회장은 당초 3일부터 바하마에서 열리는 미주 한미여성회총연합회 이사회에 참석할 계획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하루전에 불참을 알렸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미여성총연 이사진들은 전해진 비보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늘 함께할 것 같았던 분”이라며 깊은 애도와 충격을 전했다.

한미여성회 회원들은 김 회장을 두고 “항상 따뜻했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 줄 알았으며, 짧은 말 한마디에도 진심과 배려가 담겨 있던 분”이라고 회상한다. 그는 자신보다 늘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나섰던 사람이었다.

김 회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 자랐다. 한 번도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식모살이와 기차 안 떡 장사로 어린 시절을 보냈고, 6·25 전쟁 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후 1962년 미군이었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하며 또 한 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그는 미국에서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회계학 학위를 취득했고, 결국 미국 회계사로 성공했다. 포기하지 않고 배움을 이어간 그의 인생은 많은 이들에게 “늦은 때란 없다”는 희망을 전해주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은 자서전 “떡 장사에서 미국 회계사로”에 고스란히 담겨 깊은 감동을 주었다.

김 회장은 메릴랜드 한인사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며 메릴랜드 한인여성회를 창립했고, 한인회장을 연임하며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2018년에는 미주한미여성회총연합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며,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특히 국제결혼 여성들의 삶과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고, 한미여성회를 단순한 단체가 아닌 서로를 품는 가족 같은 공동체로 가꾸는 데 깊은 정성을 기울였다.

은퇴 후 플로리다로 이주한 뒤에도 그의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2012년 활동이 정지되었던 년 남서부 플로리다 한인회를 다시 시작하여 2022년까지 회장으로 봉사를 했으며, 정이 깊은 한인사회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헌신했다. 문화행사와 교류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또한 2020년 남서부 플로리다 한미여성회를 창립하여 여성들의 권익 신장, 교육, 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데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헌신은 한인사회 내부의 결속을 넘어, 다문화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이해를 넓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김 회장은 쉼보다는 봉사를, 안정보다는 나눔을 선택했던 그의 삶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이제 그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질 수 없지만, 김혜일 회장이 남긴 헌신과 사랑,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심은 한인사회 곳곳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며, 깊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윤영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