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땅 밟고 두 달 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가자 소유’ 트럼프 구상에 “그런 말에 매혹되지 않아…우리땅 지킬 것”
여느 한국인 소녀처럼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SORRY, SORRY)와 소녀시대의 ‘지(Gee)’를 들으며 자라난 팔레스타인 유학생 리나(가명)는 밝게 인터뷰를 시작했지만 이내 복잡한 심경에 목소리가 떨렸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 전쟁이 발발한 후로는 리나의 마음도 전쟁터가 됐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는 북부에서 남부까지 폐허가 됐고, 서안지구 제닌 등지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이 누적 4만 8000명이 넘었다고 집계했다.
<<산산이 부서진 마음을 다잡고 든 마이크>>
리나는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지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이곳이 아니라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상황이 안 좋아지더라도, 무엇이 일어나든지 가족과 함께하고 싶었어요”라고 회상했다.
특히 첫 한 달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과 전공 공부를 뒷전으로 둘 수 없어 매진했지만, 수업 중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리나는 “화장실에서 남몰래 울고 교실로 돌아가곤 했어요”고 말하면서도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직접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죽었지만 “만약 저게 내 가족이었더라면?”이란 생각이 리나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내가 여기서 안전하다는 것에, 내 가족은 안전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어요. 왜 저들이 가족을 잃어야 할까…누구에게도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에요. 단순히 슬픔만이 아니라 좌절·분노…한 번에 너무 많은 감정이 들었어요”라고 토로했다.
분기점은 집회였다. 서울에서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집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나는 “집회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한국어로) ‘정말 정말 감동받았어요'”라고 미소 지었다.
응원에 힘입은 그는 이달 9일, 직접 연사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전쟁 휴전 절차가 시작되고 인질과 수감자 교환이 이뤄지던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접수하겠다”는 폭탄 발언을 던진 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킨 뒤 해당 지역을 재개발하겠다고 주장했다. 원주민을 살던 땅에서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다.
마이크를 잡은 리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멋대로 미국이 가자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마치 그곳이 주인이 없는 땅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트럼프의 구상은 터무니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결코 그들의 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집에 대한 약속도, 우리의 미래를 통제하려는 어떤 제안도 우리의 결의를 꺾지 못한다”고 또박또박,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영하 10도의 매서운 한파 속 ‘팔레스타인’ 글자가 새겨진 후드티와 전통 문양이 그려진 스카프만 걸친 리나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아름다운 집 관심 없다…우리의 땅·자유 되찾는 게 우선”
리나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걱정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뉴스1의 물음에 “이스라엘은 서안지구도 통제하려 하고, 체크포인트도 설치했어요. 제닌 폭격도 예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에요. 이런 일들이 더 격화하고 있고, 가자지구와 같은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봐요.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함께하는 한 상황은 악화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도 제2의 가자지구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선하듯이, 돕겠다는 식으로 말하잖아요. 76년간 우리가 싸워온 땅인데. 트럼프가 그렇게 말한 것이 곧 그가 가자지구와 주민들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인 1948년, 팔레스타인 주민 약 75만 명을 강제 이주시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때를 대재앙이라는 뜻의 ‘나크바’로 기억한다.
리나는 가자지구를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에 대해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는 아름다운 집에는 관심 없어요. 그런 말에 매혹돼 우리의 땅을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우선돼야 할 것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것, 우리의 신성한 땅을 되찾는 것입니다”고 단호히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주는 일시적일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당연히 신뢰하지 않아요. 같은 실수를 두 번은 안 합니다. 우리는 집을 지을 조각들이 있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은 죽음·전쟁만 가득한 나라 아니란 것 알아주길”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리나는 못다 한 말이 있다며 다시 입을 뗐다.
“지금 일어나는 인종학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것만이 팔레스타인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미디어에 나오는 전부니까요. 이해는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아름다움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장소·문화적 아름다움, 그리고 유산들을요.”
자랑하고 싶은 팔레스타인 문화를 하나만 알려달라는 기자의 말에 리나는 자랑스럽게 전통춤 ‘답케’를 꼽았다.
그는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춰요. 나크바가 끝난 날에도 답케를 췄죠”라며 팔레스타인 고유의 의복과 식문화까지 10분 가까이 고향 자랑을 풀어놨다.
리나는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왔다고 했을 때, 상대방이 죽음·전쟁만을 떠올린다면 너무 슬퍼요”라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글을 더 읽어주세요.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라는 질문을 던져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것을 경험했잖아요. 이야기를 들을 마음을 연다면,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권진영 기자<기사제공 = 하이유에스 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