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오른손을 들고 취임 선서를 했으나, 아내 멜라니아가 곁에서 들고 있던 두 권의 성경 위에는 손을 얹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그의 행동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온라인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프리미어 크리스천(Premier Christian) 뉴스는 전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 장면에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성경이다. 국민 앞에 통치 신념과 지켜갈 가치를 선언하는 새 대통령이 성경을 펼쳐 들거나 성경에 손을 얹는다. 나아가 취임 선서를 하는 대통령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도 늘 관심 대상이다.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한 전통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취임하면서 창세기 49장 22~25절을 인용해 신앙을 강조하며 선서한 것이 시작이다. 그는 선서 말미에 “하나님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라는 기도를 덧붙였다. 김영한 기독교학술원 원장은 “대통령이 성경을 손에 들고 취임 선서를 하는 전통은 청교도 신앙의 영향”이라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들은 저마다의 신앙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성경을 선택하며 이 전통을 이어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할머니가 물려준 성경을 사용했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어머니가 선물한 성경 위에 손을 얹었다. 지미 카터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 사용했던 성경을 펼쳐놓고 선서를 하며 미국 건국의 정신을 기렸다.
성경 선서가 헌법상 필수 사항이 아님에도 이어진 것은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야 할 지도자에게 성경이 길잡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예제 폐지를 이끈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은 첫 취임식에선 성경을 직접 인용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취임식 때 마태복음 7장 1절과 18장 7절을 통해 국민 통합과 정의를 강조했다. 최연소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야고보서 1장 22~23절을 낭독하며 지도자의 역할을 다짐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이사야 2장 4절을, 대법원장 출신 대통령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지혜를 구하는 열왕기상 3장 9~11절을 선택했다.
어둠의 시대를 맡았던 대통령들은 성경에서 희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찾았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은 네 번의 취임식에서 사랑과 희망을 담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사용했다. 닉슨 사임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제럴드 포드는 잠언 3장 5~6절을 인용해 국민에게 신뢰와 회복을 호소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갈라디아서 6장 8절과 이사야 58장 12절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도덕적 책임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두 번째 취임식에서 이사야 40장 31절을 낭독하며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와 인내를 강조했다.
가장 자주 인용된 성경 구절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겸손한 태도를 강조한 역대하 7장 14절(“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며…”)이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이 이 말씀을 선택했다. 독실한 침례교 신자로, 신앙을 정치 철학의 중심에 뒀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겸손과 정의, 자비의 가치를 전하는 미가서 6장 8절을 인용했다.
한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성경을 언급한 대통령들이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은 헌법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선서하며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선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아모스 5장 24절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마태복음 25장 40절을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소개했다.
김철영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상임대표는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기독교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1919년 상해 임시정부 헌장 제7조에는 ‘대한민국은 신의 주권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이승만 박사, 도산 안창호 선생, 김규식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 주요 지도자들도 기독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같을 순 없다. 다원주의 사회이자 다종교 국가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미국식 전통을 그대로 이어갈 순 없기 때문이다. 김 상임대표는 “(그럼에도) 기독교적 가치는 인류 공동체의 공동선을 지탱하는 기준이 되기에 정치 지도자들이 이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