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지역에서 지난 2주동안 ‘김일성의 아이들’영화가 교회를 비롯해 코리안커뮤니티센터 등에서 상영됐다.
‘김일성의 아이들’(영어: KIM IL SUNG’s Children)영화는 2020년에 한국전쟁 70주년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라는 이색적인 소재를 통해 냉전 체제 속에서 북한 체제 형성 과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는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20년 10월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에서는 ‘공공기록물법 46조’에 의거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기록물에 한 해서 심사를 거쳐 기록물로 선정했다.
현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국가기록원 중앙영구기록관리시스템 수장고에 보관 되어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전쟁으로 남과 북에서 10만 명의 전쟁고아들이 발생했다.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능력조차 없던 시절, 남과 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고아 문제를 처리하게 된다.
남한의 전쟁고아들이 ‘해외 입양’이라는 방식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 수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름하여 현지 ‘위탁 교육’이었다.
그 결과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낯선 곳들에서 5천 명에서 1만 명에 달하는 북한 전쟁고아들이 10년 동안 생활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숨겨져 있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루마니아 (2,500명), 폴란드 (1,400명), 체코 (700명), 헝가리 (500명), 불가리아 (500명) 공식적인 외교문서에 기록된 숫자는 약 5천 명, 하지만 실제로는 1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덕영 영화감독은 영화를 만들게된 동기가 “2004년, 대학 선배인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북한인 남편을 4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루마니아 할머니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KBS 시사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던 김 감독은 곧바로 루마니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파란 눈의 할머니 사연은 그해 6월 ‘수요기획-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로 방송됐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사는 할머니의 이름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6·25 전쟁이 발발했던 1950년대 초반 갓 스무 살을 넘긴 미르초유는 당시 루마니아로 보내진 북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그녀는 북한 고아 3천여 명을 이끌고 루마니아로 온 조선인민학교 교장 조정호 씨와 사랑에 빠졌다. 4년간의 비밀 연애 끝에 두 사람은 양국의 승인을 받고 1957년 결혼했다. 기쁨도 잠시, 1959년 미르초유는 북한으로 송환된 남편과 함께 평양으로 가서 딸까지 낳았지만, 남편은 곧바로 탄광으로 보내졌고 졸지에 생이별한 부부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 조미란 씨는 어느덧 중년이 됐다. “처음엔 북한 남자와 루마니아 여성의 러브스토리라는 특이한 소재에 끌렸다. 그런데 사연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6·25 전쟁 당시 북한 전쟁고아들이 동유럽에 보내졌던 사실과 김일성 우상화 과정, 북한이 폐쇄적 체제로 변질되는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사연속에서 다큐로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오랜시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영화가 만들어 졌다”고 밝혔다.
6·25 전쟁으로 10만여 명의 전쟁고아가 발생했지만, 남북한 모두 자력으로 고아를 돌볼 여력이 없었기때문에 남한은 고아들을 미국, 유럽 등에 입양 보냈고 북한은 전쟁고아들을 ‘위탁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헝가리·체코 등으로 분산 이주시킨것이고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명령으로 당시 동유럽 각국에는 북한 전쟁고아들을 위한 ‘조선인민학교’가 설치됐던 것이다.
외교부 문서 등 공식 기록에 따르면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동유럽에 머물렀던 북한 고아들은 최소 5000명 이상이다. 김 감독은 실제론 1만 명은 됐을 거로 추정했다.
김감독은 “두 가지가 흥미로웠다. 아이들이 유럽 곳곳에 흩어져 생활하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었고, 북한 체제의 폐쇄성과 김일성 정권의 실체가 이 속에 들어있다 싶었다.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라고 했다.
이번 영화상영에는 워싱턴지역의 여러 교회가 참여했고 특히 코리안커뮤니티센터에서 상영 할 때는 많은 외국인들도 영화관람에 동참했다. 영화관람은 인터넷에서 왓챠나 티빙으로 볼수 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이태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