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달 16일 정상회담을 통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필요성에 재차 공감하고 그동안 중단됐던 정상 간 셔틀외교 복원과 한일 정부 당국 간 협의체 재가동 등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 같은 정상 간 합의의 진정성을 평가하기도 전에 이번 회담 내용과 결과 등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일본발(發) ‘언론플레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앞서 우리 정부는 국내 여론 악화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이달 6일 ‘제3자 변제’를 골격으로 하는 내용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발표했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 등으로 지난 수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단 판단에서였다.
이번에 양자 차원의 한일정상회담이 12년 만에 열린 것도 우리 대법원 판결에서 비롯된 일본 측의 법적 부담을 우리가 먼저 덜어주는 ‘결단’을 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이 보여준 태도엔 상식을 벗어난 측면이 있다. 일본 정부·여당 인사들이 앞다퉈 ‘독도 영유권’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일본 후쿠시마(福島) 수산물 수입’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 방류’ 등이 이번 정상회담 혹은 윤 대통령과 일본 정치인들 간의 만남에서 논의됐다는 주장을 자국 언론을 통해 퍼뜨리며 마치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한 일본 측의 ‘성과’인 양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앞서 정상회담 뒤 공동 회견을 통해 그 내용을 직접 설명했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두 정상이 직접 공식적으로 밝힌 것 외의 대화 내용들이 일본 언론들을 통해, 그것도 상당 부분 자국 입맛에 맞게 상당 부분 ‘왜곡’된 형태로 보도되고 있는 건 분명 ‘신의’를 저버린 처사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지난달 28일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의 강제성을 희석시키고 독도에 대한 억지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내용의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까지 공개하며 한일 정상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 의지마저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우리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움직인 건 일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북한 등 역내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간 협력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꼼짝하지 않던 일본을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우리가 기대했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를 취하긴커녕 정상회담 결과마저 국내 정치에 악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교적 신의를 먼저 깬 건 일본이다. 우리도 더 이상 일본의 그릇된 언론플레이에 손을 놓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
노민호 기자 [email protected] <기사제공 = 하이유에스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