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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커뮤니티센터(KCC)를 든든한 반석위에 잘 세워 놓고 이사장 직을 내려 놓는 최병근 전 미주총연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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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자 최병근, “동포사회 발전위한 그의 지갑은 아직도 열리고 있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밤에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에는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아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邃作後人程)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라.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께서 좌우명으로 삼았던 시이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사셨기에 지금도 대한민국 지도자 중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현재 미주동포사회는 양적·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미주동포사회가 이렇게 급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눈 덮인 밤길을 마다않고 발자국을 남기며 희생한 많은 이민 1세대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하면서, 이제는 은퇴 후의 삶을 즐기고 있는 동포사회 지도자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구랍 27일 버지니아 애난데일 한인타운 인근에 위치한 한인커뮤니티센터(KCC)에서 2022년 마지막 이사회를 개최하고 이사장 직을 내려놓는 최병근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인커뮤니티센터는 2019년 12월 한국정부 지원금 50만 달러, 페어팩스카운티 지원금 50만 달러와 워싱턴 동포사회에서 십시일반 모금한 135만여 달러로 구입된 4층짜리 건물로 총면적은 3만3612스퀘어피트고 101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다.

이 건물 마련을 위해 거액을 모으고, 또 기부하기도 했던 최병근 회장은 KCC 하드웨어와 소포트웨어를 총괄 관리, 운영하는 이사회의 이사장 직을 지난 2년 동안 잘 수행하여 KCC가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
2005년 미주총연 회장 당시 기자회견 모습

최 회장은 올해 72세로 부인 최평란 여사와 함께 1973년 워싱턴으로 이민 온 올드 타이머이다.

여느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싸구려 아파트와 중고차로 미국 이민생활을 시작한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형 인터네쇼날 마켓 ‘Best Way’ 8개를 운영하는 사업가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구었다. 현재 베스트웨이 5곳은 두 아들 마이클과 토마스가 관리하고 있고 3곳은 조카들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성공한 이민자들의 삶처럼 그도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많은 헌신을 해왔다.

그가 역임한 크고 작은 단체들로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워싱턴한인연합회, 워싱턴 민주평통, 워싱턴 호남향우회 등이며 워싱턴 D.C에 소재한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의 매입과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할 통합 기구를 구성했는가 하면, 부인 최평란 전 워싱턴한인YMCA 이사장과 함께 한미장학재단에 영구장학금 1만5천달러를 기탁하는 등 그야말로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의 동포사회 지도자의 삶을 살아왔다.

제20대 미주총연 회장 재임 시에는 캐나다한인회총연합회(회장 이기훈)와 함께 재외국민의 국내 선거 투표권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는가 하면,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산하에 재외동포청을 신설 요구, 이중국적 허용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이러한 활발한 사회봉사 공로로 2005년 대한민국 정부가 유공 동포 포상자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2009년 모금했던 건립기금에 최병근 이사장이 7만 달러를 보태 30만달러를 KCC에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은 황원균 간사, 김태환 현 이사장, 김영진 당시 정책이사)

이날 최병근 회장과의 인터뷰에는 문답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40년 동안 동포사회와 함께하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쭈욱 지켜봐왔기 때문이고, 인터넷 검색창에서 ‘미주한인 최병근’을 치면 그의 이민 발자취를 한눈에 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난립되고 있는 워싱턴 지역 한인회들과 양분되어 있는 ‘미주총연’에 대해 선배 자격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이민 1세대들이 나름데로 기초를 잘 구축해 놓았으니 이제 차세대가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때이다”고 했다.

최 회장은 또 “한인회는 자생단체이고 동포사회가 재정적으로 충분히 잘 감당할 수 있는데 너무 한국정부 지원금에 매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제는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회장은 자신이나 단체의 발전을 위해 연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미주총연 총회장 임기가 끝날 무렵, 실제로 그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연임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자신과 경선을 벌였던 김영만 중남부연합회장을 21대 회장으로 적극 지원하여 단독 출마 당선되게 했다.

최근 미주총연이 사분 오열되게 만든 ‘조정위원회’ 사태에 관해서는 “조정위원으로 내 이름이 도용된 것에 대해 유감스러웠지만 내가 더 이상 미주총연에 관여하지 않는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기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수년 전 사업과 동포사회봉사 일선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동포사회 대소사를 위해서는 어김없이 그의 지갑은 열리고 있다. 워싱턴 동포단체 중에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단체는 거의 없을 정도임을 올드 타이머들은 다 기억하고 있다.

이사장 직을 내려놓고 평이사로 돌아가는 이날에도 2023년도 이사회비의 갑절인 1만달러를 지갑에서 꺼내 놓았다.

최 회장은 전남 광주 출신이다. 경남 진해 출신인 필자가 동포사회와 인생의 선배로로서 그분을 존경하는 이유는 단 하나, 동포사회와 조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출신지역이나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허리도 편찮으신데 이렇게 봉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필자의 인사에, “강 기자! 자네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는 나를 다시 동포사회에 나오도록 만들었다”고 마치 야단치듯 웃으면서 말한 그는 “워싱턴 동포사회에서 피땀 흘려 건립한 K-센터가 제 기능을 잘 발휘할 때까지 이것이 나의 마지막 봉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K-센터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병근 전 이사장과 김태환 현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