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려면 수백 km 이동”
* 동포청, 실질적 권리 보장 논의 본격화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의 재외선거 제도는 여전히 ‘이름만 있는 권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행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재외선거 제도는 1972년 유신체제 선포 이후 폐지됐다가 재외동포들의 헌법소원을 계기로 다시 도입됐다. 이후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재외국민 투표가 재개되며 제도가 부활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재외국민의 참정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선거 기준 재외선거권자는 약 197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 투표에 참여한 인원은 20만여 명에 그쳐 투표율은 10% 남짓에 불과했다. 이는 재외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라기보다 현행 제도가 만들어 놓은 구조적 장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치라는 분석이 많다.
현재 재외국민이 투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유권자 등록을 하고 지정된 재외공관이나 투표소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전 세계 118개국에 설치된 투표소는 223곳에 불과하다. 그 결과 상당수 유권자들은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미국과 같은 광활한 지역에서는 그 부담이 더욱 크다. 공관이 생활권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아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사례도 흔하다. 어떤 유권자들은 단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1박 2일 일정을 감수하기도 한다. 한국처럼 선거일이 공휴일도 아니기 때문에 직장인은 휴가를 내야 하고 자영업자는 하루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낮은 투표율을 두고 재외국민의 무관심을 탓하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재외동포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우편투표와 전자투표 도입, 투표소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치권은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를 헌법적 권리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 왔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실제로 과거에는 재외국민 투표가 특정 정당에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 속에서 제도 개선이 지연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재외국민에게도 국민투표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투표법 개정안을 의결했지만, 야당이 절차 문제를 제기하며 표결에 불참하는 등 정치권의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외동포청이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재외동포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후원으로 오는 2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재외선거 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해외 재외국민의 투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우편투표 운영 사례와 OECD 국가들의 선거 제도를 분석하고, 전자투표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는 발표가 이어진다. 세계 최초로 전자투표를 도입한 에스토니아 사례도 주요 참고 사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주제 발표 이후에는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패널 토론과 질의응답을 통해 현실적인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재외동포청 김경협 청장은 “해외에 거주하는 국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은 국민주권 실현의 핵심”이라며 “국내외 다양한 사례와 의견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외국민은 대한민국 밖에 살고 있을 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경제와 문화, 외교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은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다.
참정권은 정치권이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만약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하는 제도라면 그것은 이미 정상적인 선거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이제 국회와 정부는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우편투표와 전자투표 등 현실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전 세계 재외국민이 실질적으로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하이유에스 코리아 강남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