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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이상 이민자의 나라가 아닌가?… 짐 싸서 유럽으로 향하는 미국인 증가

“더 나은 삶 찾아 떠난다”
* 미국 순유출 90년 만에 현실화
* 생활비·치안·정치 불안 등 복합 요인

‘이민자의 나라’로 불리던 미국에서 인구 순유출 현상이 현실화됐다. 지난해 미국을 떠난 인구가 유입 인구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대공황 시기인 1935년 이후 약 90년 만의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각국 거주 허가 자료, 해외 주택 구매, 유학생 통계 등을 종합한 결과 미국인의 해외 이주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흐름은 현 행정부 출범 이전부터 이어져 온 장기적 변화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 미국의 순유출 규모를 약 15만 명으로 추산했다. 동시에 미국으로 유입되는 인구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3년 약 6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에는 260만~27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불법 이민자 추방 강화 정책의 성과로 해석하고 있다. 백악관은 수십만 명의 불법 체류자를 추방했으며,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골드 카드’ 프로그램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WSJ이 분석한 데이터는 미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해외 이주가 별도의 흐름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인들의 주요 행선지는 유럽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 대부분에서 미국인 거주자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포르투갈은 팬데믹 이후 미국인 거주자가 5배 이상 증가했으며, 2024년 한 해 동안에만 36% 늘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지난 10년간 두 배로 증가했고, 체코 역시 두 배 이상 늘었다. 독일과 아일랜드는 지난해 미국으로 떠난 자국민보다 미국인 유입이 더 많았으며, 영국에서는 미국인의 시민권 신청이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주 이유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높은 생활비, 총기 범죄에 대한 우려, 정치적 불안, 그리고 유럽의 상대적으로 안정된 삶의 질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 미국인 직장인은 “임금은 낮아도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다”며 자녀가 총기 난사 대피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일하던 한 보험 분석가는 생활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알바니아로 이주했으며, 현지에서는 월 1000달러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해외 이주의 주체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험적인 전문직 종사자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중년 직장인, 은퇴자, 유학생 등 일반 계층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이주 컨설팅 업체에 따르면 설명회에 수백 명이 몰리는 등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멕시코 국경 인근에는 저렴한 요양 서비스를 찾는 미국 고령층의 유입으로 관련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시민권 포기 사례도 증가세다. 해외 소득 과세 부담을 피하거나 외국 국적 취득을 원하는 미국인의 시민권 포기 신청은 2024년 48% 급증했으며,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각국은 이러한 흐름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디지털 노마드 비자 요건을 완화하고 외국인 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미국인 유치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는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10%에서 지난해 20%로 두 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고, 복지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관 변화가 해외 이주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