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의 행보는 여전히 신중하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앞다퉈 금을 사들이는 흐름과 달리, 한국은 13년째 금 보유량을 늘리지 않으며 세계 순위에서도 한 계단 밀려났다. 이 같은 전략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온스당 5,100달러를 돌파한 국제 금값은 지난해 65% 급등한 데 이어 올해도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 달러 가치 변동성, 글로벌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금은 다시 한 번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흐름에 맞춰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폴란드와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여러 신흥국은 지난해에만 수십 톤의 금을 추가 매입하며 외환보유 구조를 조정했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제재나 전쟁 등 극단적 상황에 대비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금을 추가 매입하지 않았다. 현재 보유량은 104.4톤으로, 13년째 같은 수준이다. 그 사이 세계 중앙은행 금 보유 순위는 38위에서 39위로 내려앉았다. 전체 외환보유액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3% 초반에 그친다.
한국은행이 금 매입에 소극적인 이유로는 몇 가지가 거론된다. 금은 채권이나 달러 자산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필요할 때 즉각 현금화하기 어렵고,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에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과거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2010년대 초반 공격적으로 금을 매입한 직후 국제 금값이 급락했던 기억이 정책 결정에 부담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단기 가격 변동에 따른 비판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미국은 세계 최대 금 보유국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와 재무부는 약 8,100톤 이상의 금을 보유하며, 이는 달러에 대한 신뢰를 뒷받침하는 상징적 자산으로 기능한다. 다만 미국 역시 최근 금을 적극적으로 추가 매입하기보다는, 이미 구축된 막대한 보유량과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통화 패권과 외환 구조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달러 자체가 기축통화인 반면, 한국은 외환시장 안정과 유동성 관리가 최우선 과제다. 이 때문에 금보다는 달러 자산과 국채 중심의 외환보유 전략을 유지해 온 것이다.
다만 금값이 장기적으로 구조적 상승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시각이 늘어나면서, 한국은행의 전략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통화 신뢰를 보완하는 ‘보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값이 다시 한 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한국이 현재의 보수적 기조를 유지할지, 아니면 점진적 다변화에 나설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더욱 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