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쿠팡(Coupang)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개인정보 유출 논란을 넘어 국제 통상 분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의 방미 일정과 맞물리며, 이번 사안은 사실상 갈등을 넘어 ‘정부 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정면 충돌 양상으로 전개되는 분위기다.
22일 워싱턴DC에 도착한 김민석 국무총리는 연방 하원의원들과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첫 외국 방문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무총리가 단독으로 미국을 찾은 첫 사례다.
김 총리는 방미 기간 중 밴스 부통령과의 면담도 조율 중이며, 워싱턴DC 일정 이후 뉴욕을 거쳐 한국 시간으로 26일 귀국할 예정이다. 외교·통상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쿠팡 사태가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쿠팡 투자사들 “한국, FTA 위반”… ISDS 카드 꺼냈다
김 총리의 방미 시점에 맞춰 쿠팡을 둘러싼 갈등은 급격히 격화됐다.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투자사 그린옥스(Greenoaks)와 알티미터(Altimeter)는 22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 착수 의향서를 한국 정부에 제출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조사와 제재가 쿠팡을 ‘표적화’한 조치라며, 그로 인해 주가 하락 등 투자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자국 및 중국 대기업 경쟁사를 보호하기 위해 쿠팡을 공격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투자사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무역대표부에 직접 개입을 요청했다. 이들은 한국의 대응이 부당하고 차별적이라며,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공식 조사를 통해 무역 보복 조치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청원했다.
배경에는 쿠팡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고객 계정 3379만 개 개인정보 노출 사태가 있다.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 주문 정보 등이 포함된 대규모 유출 사건 이후 한국 정부는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쿠팡 창업자인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해롤드 로저스 한국 쿠팡 임시대표가 출국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 미 의회 “한국, 미국 기업 차별”, 여야 초당적 압박
미국 정치권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미국 연방하원 세출위원회는 2026 회계연도 예산안 보고서에서 한국의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규제법)’ 입법 동향이 미국 기술기업을 겨냥하고 있으며 중국 경쟁사에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USTR에 대해 온플법 제정 시 60일 이내에 미국 기술기업과 외교·통상 이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의회에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한국을 향한 제도적 압박으로 해석된다.
또한 USTR은 지난해 12월 예정돼 있던 한미 FTA 공동위원회 비공개 회의를 돌연 취소했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1기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은 “한국이 미국 기술기업을 표적으로 삼아 한미 무역관계 재균형을 저해한다”고 공개 비판했다.
* 쿠팡의 ‘로비 전쟁’, 미 정계에 1천만 달러 투입
미국 상원이 공개한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나스닥 상장 이후 미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약 1075만 달러(약 159억 원)를 로비 자금으로 지출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단순 기업 이슈가 아니라 정치·외교·통상이 결합된 복합 전쟁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한국 정부의 플랫폼 규제 주권과 미국의 자국 기업 보호 논리가 정면 충돌한 사례로 보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공정 경쟁이라는 명분 아래 시작된 갈등이, 이제는 한미 통상 관계 전반을 흔드는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쿠팡과 한국 정부의 대립은 이미 국내를 넘어 국제 무대에서 본격적인 ‘통상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김민석 총리의 방미 외교가 이 긴장을 완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갈등의 불씨를 더 키우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