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헤리티지 대학교(Washington Heritage University)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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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을 맞아 복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복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덕담을 나눕니다. 미국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God bless you!”라고 인사를 건냅니다. 그런데 복에 대하여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런 생각을 갖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소위 ‘기복신앙(祈福信仰)’이라는 용어 때문입니다. 기복신앙이란 ‘복을 기원하는 신앙’이라는 뜻인데, 말 자체로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길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한국인들의 민간신앙인 무속신앙에 접목이 되면서 기형적인 신앙 행태를 낳기 때문에 심지어 ‘무당 신앙’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상관 없이 무조건 복만 비는 잘못된 신앙행태는 비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올바른 신앙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신앙을 타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을 보면 복이라는 단어가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영어로Gospel인데, 이 말은 고대 영어에서 온 말로서, 기쁜소식(Good News)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복된 소식’이라 해서 복음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참 번역을 잘 했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 공효로 값없이 그저 믿음 하나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고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자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옛부터 동양에서는 오복(五福)을 말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 일컫는 말입니다.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은 수(壽)입니다. 장수의 복입니다. 두 번째는 복은 부입니다.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 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복은 는강령(康寧)인데, 심신이 건강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을 말합니다. 네 번째 복은 유호덕(攸好德)으로, 선행과 덕을 쌓는 복입니다. 일반적으로 관념으로 볼 때, 유교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의외의 복입니다. 다섯 번째 복은 고종명(考終命)의 복입니다. 이 복은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히 생을 마감하는 복을 의미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9988234의 삶과 일맥상통하는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시편 128편을 중심으로 기독교인의 5복을 생각하며 설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시편128:1-6)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첫 번째 복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복”입니다 (1, 4절).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세속적인 복을 받는 것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장수를 한다고 해도 육신의 죽음과 함께 삶은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의 약속에 의하면, 비록 이 땅의 삶이 끝난다 해도 영원에 잇대어 사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복은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입니다 (2절). 시편 127:1-2절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헛되이 수고만 할 뿐 아무런 공적이 없는 도로무공(徒勞無功)의 삶, 헛되이 수고만 할 뿐 아무런 보람이 없는 도로무익(徒勞無益)의 삶은 허망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횡재를 바라는 요행심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마에 땀을 흘린 만큼 결실을 거두려는 마음은 건전한 근로정신이며, 그 결실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영어에 “Easy come, easy go.”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게 된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복권에 당첨된 후 오히려 가정 파탄이 나거나 이전보다 삶이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벼락부자가 된 자들이 돈을 흥청망청 무절제하게 쓰다가 파산하거나 부도덕한 스캔들에 연루가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수고하며 알뜰살뜰하게 재산을 모아야 돈 귀한 줄 알고 검소하고 반듯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은 “가정 화목의 복”입니다 (3절).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저는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한 폭의 그림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그래서 누군가 이 구절을 화폭에 옮겨놓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보곤 합니다. 포도와 올리브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요긴한 것들입니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정겨워 보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법입니다.
네 번째 복은 “평강의 복”입니다 (5, 6절). 시온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다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복과 번영과 평강을 주신다는 것은 한 마디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의미합니다.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려야 국민도 안심하고 살 수 있습니다. 당장 이 시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착취와 억압과 갈등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복은 “자녀의 복”입니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보는” 복은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소중한 복으로 여겨졌습니다. 한 가문의 번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혈육의 대이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특히 믿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계대(繼代)가 중요합니다. 자자손손 신앙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맥맥히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바라건대, 우리 모두 크리스천의 복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이 다섯 가지 복을 누리며 또한 후대에게도 전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