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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송대관이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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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국민가수’ 송대관 별세, “돈과 인연 없어” 굴곡진 인생사

‘국민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7일 새벽(한국시간) 통증을 호소, 급히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고인은 평소 지병이 있었으며 그간 수술도 세 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대관의 측근은 뉴스1에 “(송대관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호전이 되고 있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다”라며 “공연을 하면서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면 ‘형 모르냐’라며 무대를 사랑했던 분”이라며 오열했다.

1946년 6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지난 1967년 곡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이후 1975년 발표한 곡 ‘해뜰날’이 대히트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이후 각종 상을 휩쓸며 트로트계 레전드로 올라섰다.

이후 1980년대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가, 1989년 ‘혼자랍니다’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후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 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박자’ ‘유행가’ ‘딱 좋아’ 등 히트곡을 남겼다.

송대관은 고(故)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활약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태진아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송대관은 가수 활동 외에도 여러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2009년 ‘공주가 돌아왔다’, 2011년 ‘신기생뎐’, 2013년 ‘웰컴 투 힐링타운’ 등에서 활약했다.

최정상 트로트 가수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그는 사업 실패와 송사로 인해 극심한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2021년 12월 MBN ‘특종세상’ 출연 당시 집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트로피를 가리키며 “남들은 돈을 많이 모아 비축을 해놨는데 나는 돈하고 인연이 없어서 이게 내 재산이고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채무를 10년에 걸쳐 회생해 가며 갚고 있다고 밝히며 “대천 어디 큰 땅덩어리인데 7만 평 대지, 평지의 땅을 보고 아내가 너무 좋아했다. 저 땅을 자기가 일궈 내겠다고 해서 ‘알았어, 해봐’ 그러고 말핬다. 그런데 그걸 자기 돈으로 다 샀으면 좋은데 돈이 많이 필요해서 융자를 썼다. 땅 계약이 해결되고 돈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빨리 안 되니까 이자가 쌓여가는 게 장난 아니었다. 나중에 빚이 280억까지 갔다”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던 송대관은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한동안 활동에 나설 수 없었다. 그 사이 가짜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재기를 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잘못한 게 없습니다’ 해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와중에 ‘송대관 자살’이라고 유튜브에 뜨더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짓 가짜 뉴스로 너무나 많이 고통을 받으니까, 나중에는 그 부분에서는 내가 먹통이 돼버렸더라”라고 밝혔다.

설운도는 이날 뉴스1과 통화에서 고인에 대해 “참 점잖고 우직한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무대 욕심이 많아 열심히 활동하셨다”라며 “항상 최선을 다하시고 스타로서 품위가 있으셔서 존경심이 가던 선배”라고 추억했다.

고인은 숱한 히트곡을 남겼지만 그와 함께 호흡한 베이비 붐 세대들은 1971년 발표한 ‘세월이 약이겠지요’와 1975년 ‘(쨍하고) 해뜰 날’을 그중 으뜸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쨍하고 해뜰날’은 새마을 운동에 박차를 가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국 경제 성장과 궤를 함께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특히 좋아한 노래고 유명하다.

바로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라는 구절 때문으로 이른바 ‘하면 된다’는 새마을 운동을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또 정주영 회장은 사원들과 회식 자리, 운동회 등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쨍하고 해뜰 날’을 열창한 것으로 유명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고승아,신초롱 기자<기사제공 = 하이유에스 코리아 제휴사,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