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을 맞아, 시대를 깨운 거인 월남 이상재 선생을 기억하며

1919년 3월 1일,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함성 뒤에는 그 거대한 불꽃을 가능케 했던 사상의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어른,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입니다. 개화사상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였던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시대적 책임을 피하지 않았던 민족의 등불이었습니다.
충남 서천 한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삶은 곧 한국 근대사의 축약본과도 같습니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며 개화의 눈을 떴고, 1888년에는 주미공사관 서기로 근무하며 서구 문물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특히 워싱턴 D.C.에서의 경험은 선생의 사상적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는 법치와 의회 토론,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목격하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국가의 힘은 권력이 아닌, 시민의 도덕성과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진리였습니다. 이 깨달음은 귀국 후 독립협회 조직과 YMCA 청년 계몽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에게 독립이란 단순히 외세를 몰아내는 것을 넘어, 우리 국민이 스스로를 다스릴 만한 ‘도덕적 인격’을 갖추는 고귀한 과정이었습니다.
1896년 송재 서재필 선생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해 만민공동회를 주도하며 참정권 확대를 주장했으나, 1898년 해산 이후 낙향했습니다. 1902년 ‘유길준 쿠데타 사건’에 연루되어 아들과 함께 2년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기독교에 입교했으며, 이후 을사조약 체결 뒤에는 황성기독교청년회 활동과 전국 순회를 통해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국권회복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쓴 대표적 민족 지도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1운동 당시 만 68세였던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마저 잡혀가시면 안 된다"는 후배들의 간곡한 만류 때문이었으나, 선생은 결국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습니다. 감형을 구걸하지도,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던 그의 투옥은 그 자체로 거대한 도덕적 선언이었습니다. 독립은 청년들의 혈기만이 아닌, 민족 전체가 짊어져야 할 운명임을 몸소 증명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선생은 물산장려운동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꾀하고, 조선일보 사장으로서 민족 언론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1927년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연대한 신간회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항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그해 서거하신 선생의 장례가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진 것은, 그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기둥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선생의 숭고한 독립정신은 1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선생의 고향인 충남 서천에서 생가지를 지키며 귀중한 자료를 기증한 종손 이상구 씨와 더불어, 미국 올랜도에 거주하며 지역 사회에 헌신하는 증손녀 이미영 씨의 행보는 선생의 정신이 시공간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미영씨는 35년째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올랜도 한미여성회 회장,중앙플로리다 한인회 이사, 올랜도 노인복지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며, 지역사회와 한인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증조부께서 강조하셨던 ‘시민의 도덕성과 봉사 정신’을 타국 땅에서 몸소 실천하며 그 고결한 뜻을 계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한인들에게 선생의 삶은 더욱 각별합니다. 130여 년 전 선생이 이 땅에서 목격했던 민주주의와 신앙의 가치를 우리는 지금 일상으로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세의 함성 뒤에 있었던 한 어른의 단호한 침묵은 오늘날 자유를 누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어떤 자세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번 3·1절, 미주 한인 사회가 월남 이상재 선생을 다시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민자이자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독립 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강조했던 자유와 책임, 그리고 도덕적 시민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하며 미래에 대한 책임을 다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선열들이 뿌린 희생의 씨앗이 오늘날 우리의 자유로 피어났음을 잊지 않고, 미래 세대에게 그 고귀한 정신을 온전히 전하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독립운동의 완성일 것입니다.
하이유에스코리아 윤영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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