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윤기자의 펜과 렌즈 사이

강남중 기자




떡 장사 소녀가 남긴 마지막 유산, '우리'라는 이름의 화합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전해진 김혜일(Lily Kim Hale) 전 미주 한미여성회 총연합회 이사장님의 별세 소식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습니다. 평생을 ‘나’보다 ‘우리’를 위해 헌신하며 다문화권 여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앞장섰던 고인의 마지막 길 위에서, 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여성 지도자이자 따뜻한 이웃이었던 한 사람을 향한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고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자 희망이었습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으로, 정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식모살이와 기차 안 떡 장사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소녀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 회계사가 되기까지, 그녀를 지탱한 것은 불굴의 의지였습니다.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회계학 학위를 취득하며 성공을 일궈낸 뒤에도 그녀는 쉼보다는 봉사를, 안정보다는 나눔을 선택했습니다. 배움에 늦은 때란 없음을 몸소 보여준 자서전 『떡 장사에서 미국 회계사로』는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우리가 김혜일이라는 이름을 진정으로 존경하는 이유는 그녀의 개인적인 성공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공의 정점에서 그녀가 손을 내민 곳은 늘 '우리'라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2018년부터 4년 동안 미주한미여성회총연합회(KAWAUSA) 이사장으로 봉사하며 국제결혼 여성들에게 쏟으신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저는 2018년 KAWAUSA 회장직을 수행하며 이사장님과 가장 가까이서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을 소중히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배움의 기회가 적어 한글 읽기가 서툴렀던 이사장님은 단톡방에 긴 글이 올라오거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을 때면, 수줍은 기색 없이 제게 전화를 걸어 조목조목 물어보곤 하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여성회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며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 전화기 너머 들려오던 소탈한 음성에는 단체에 대한 걱정과 회원들에 대한 사랑이 늘 가득했습니다.

은퇴 후 플로리다로 이주한 뒤에도 활동이 중단되었던 한인회를 재건하고, 남서부 플로리다 한미여성회를 창립하는 등 그녀의 헌신은 한인사회 내부의 결속을 넘어 다문화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넓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미여성회 회원들은 그녀를 “항상 따뜻했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 줄 알았으며, 짧은 말 한마디에도 진심과 배려가 담겨 있던 분”이라고 회상합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고인이 생전에 관심을 가지셨던 메릴랜드 한인타운의 조형물을 지나쳤습니다. 그 현판에 새겨진 우리 KAWAUSA의 이름은, 고인이 그토록 원하셨던 '함께'의 가치를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한때의 작은 오해나 서운함은 흐르는 시간 속에 흩어질 뿐, 결국 우리가 향했던 진심은 언제나 같은 곳에 있었음을 그 조형물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고인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질 수 없겠지만, 김혜일 이사장님이 남긴 헌신과 사랑, 그리고 사람을 향한 진심은 한인사회 곳곳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며 깊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서로 의지하며 하나가 되자"던 그분의 따뜻한 온기는 이제 남은 우리들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이사장님, 당신이 닦아놓은 화합의 길 위에서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우리'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당신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송가가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가난도, 갈등도 없는 평안함 속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미주 한미여성회 총연합회 초대회장 실비아 패튼

202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