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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값 급락에 한파까지…서울 골목서 하루 2만 원도 버거운 노년

연일 영하권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도심 곳곳에서 폐지를 모으며 생계를 잇는 노인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재활용 원료 수요 감소로 폐지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한겨울 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리어카를 끌어도 손에 쥐는 돈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29일 서울 동대문구와 중랑구 일대.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고 골목을 돌던 70대 김모 씨는 고물상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동안 모은 폐지를 모두 팔아도 1만5000원 남짓. 김 씨는 “예전엔 박스 좀 모으면 그래도 하루 밥값은 나왔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돌아도 만 원 조금 넘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고물상에 따르면 2026년 1월 기준 폐지 매입가는 ㎏당 약 40~50원 수준이다. 1년 전만 해도 70~80원 선이었지만, 최근 제지업계의 원료 수요 감소와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시세가 사실상 반 토막이 났다. 골판지와 신문지 모두 큰 차이가 없고, 상태가 조금만 나빠도 가격은 더 낮아진다.

폐지 수집에 종사하는 노인 대부분은 하루 평균 20~30㎏가량을 모은다. 이를 모두 팔아도 수입은 1000~1500원 수준에 그친다. 고물이나 캔, 병 등을 함께 모아야 하루 2만 원 내외의 수입이 가능하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예전만큼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수천 명 규모로 추정되며, 이 중 다수가 70세 이상 고령층이다.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폐지 수집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겨울철에는 낙상 위험과 저체온증 위험이 커지지만, 일을 멈출 수 없는 현실이 이들을 거리로 내몬다.

서울시는 일부 자치구를 중심으로 폐지 수집 노인을 위한 안전 조끼 지급, 리어카 개선, 공공 일자리 연계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공동 집하장을 통해 폐지를 판매하면 시세보다 높은 단가를 적용하는 시범 사업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원이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격차가 크고, 실제 생활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폐지 가격 하락이 단순한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라고 본다. 종이 사용량 감소, 디지털 전환, 제지업계 구조 조정 등이 겹치면서 폐지 시세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폐지 수집 노인을 단순한 재활용 노동자가 아닌 ‘노인 빈곤 문제’의 한 축으로 보고 보다 체계적인 복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폐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이미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보여준다”며 “단가 보전이나 일회성 지원을 넘어,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형 일자리와 복지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파 속에서도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의 모습은 서울의 화려한 도심 이면에 자리한 또 다른 현실이다. 폐지값 하락이라는 숫자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 끼니와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사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