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재외국민뉴스

“연명치료 원치 않습니다”…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한 사람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따라 치료 중단 5만 건 넘어 — 자기결정권 존중 문화 확산

한국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 고 사전 서약한 뒤 실제로 이에 따라 치료를 중단한 사례가 5만 건을 넘어섰다.
죽음을 회피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이제는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자기결정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7년… 45만 명이 연명의료 중단 선택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누적 건수는 45만 3,785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따른 사례가 5만 130건으로, 2018년 0.8%에 불과했던 비율이 2025년에는 21.2%까지 급증했다.

연명의료란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등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하는 시술을 뜻한다. 효과보다 고통이 커질 수 있어, 최근엔 이를 “무의미한 연명치료” 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족이 아닌 ‘나 스스로’ 결정하는 시대

연명의료 중단은 다음 4가지 방법 중 하나로 결정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말기환자의 연명의료계획서
-가족 2인 이상의 일관된 진술
-가족 전원 합의

과거에는 가족이 대신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환자 본인의 문서에 따른 중단 비율은 꾸준히 상승 중이다. 2018년 32.5%였던 자기결정 비율은 2023년 50.8%, 2025년 9월 기준 **52.4%**로 집계됐다.

특히 50~70대 중장년층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들은 “무의미한 치료보다 존엄한 마무리”를 원하며 생전에 스스로 서류를 작성하고 등록하는 사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구나 작성 가능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작성 가능하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된다.
해당 문서에는 연명치료 거부 여부, 호스피스 이용 의사 등이 포함되며 필요할 경우 언제든 수정 또는 철회할 수 있다.

현재 등록자는 306만 9,000명(2025년 9월 기준) 으로 매달 약 1만 명 이상이 새롭게 서약을 남기고 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삶을 사랑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연명의료 중단 제도의 확산이 “죽음의 공포를 줄이는 문화적 전환”이라고 평가한다.

서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시간을 줄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 을 발표하며 2028년까지 자기결정 비율을 56.2%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온라인 등록 확대, 지방 보건소 내 상담 창구 확충, 의료진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이 추진된다.

재외동포 사회에서도 관심 커져

미국과 캐나다 등 한인 사회에서도 최근 한국식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Advance Directive’ 또는 ‘Living Will’ 형태로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며, 한국의 서류 역시 영문 번역본을 준비해 두는 교포가 늘고 있다.
워싱턴DC 인근에 거주하는 교포 김모(72) 씨는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미국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서약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존엄한 마무리, 그것이 진정한 ‘삶의 권리’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말은 삶을 포기하는 선언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겠다는 표현이다.

의료기기와 인공호흡기 속에서 연명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용기 —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새로운 ‘용기’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