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의 손으로 되살리는 역사 정의]
“조부의 독립운동, 이제야 세상에 알립니다”
미국 거주 한인,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으로 조부의 공적 찾다
2025년 기준 독립유공자 등록 절차 A to Z 정리
2025년 7월 12일 |서울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교포 박민수(58) 씨는 최근 한국 국가보훈부에 조부의 독립운동 관련 포상신청서를 제출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가 일제 헌병에게 끌려갔다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습니다. 당시엔 증거도 없고, 막연한 이야기로만 여겼는데, 이제라도 할아버지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박 씨는 조부의 독립운동 경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한국의 독립유공자 등록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했다.
박민수 씨의 조부인 박경호(朴慶浩, 1897~1943) 선생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3.1운동 이후 국내에서 항일 지하조직 ‘자강결사단’(가명)에서 활동했다.
1920년대 중반, 박 선생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한 뒤, 길림성 화전현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국내 연락망 구축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의열단과 연계된 국내 조직원들과 연락하며 조선총독부 산하 관공서 습격을 모의한 혐의로 1930년 체포되었고, 같은 해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만주로 건너가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사망할 때까지 무국적자로 생을 마감했다.
박씨 집안은 해방 이후 북한 지역에 속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6.25 전쟁 중 월남했고, 박경호 선생의 막내아들(박민수 씨의 부친)은 미국으로 이주해 현지 한인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다.
박민수 씨는 조부의 사망 당시 가족이 소지했던 일제 판결문 사본, 조선일보 1930년 기사 스크랩, 당시 사용된 회람문과 항일 구호가 담긴 쪽지를 유품으로 보관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품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가보처럼 간직해왔습니다. 저도 당시엔 그냥 오래된 종이인 줄만 알았죠. 이번에 포상신청을 준비하며, 하나하나 번역하고 해석해보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진짜 증거였습니다.”
“독립운동가 예우는 국가의 책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가보훈 기본법」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에 대해 훈장 수여 및 보훈대상자로 등록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훈격은 크게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으로 구분되며, 신청이 승인될 경우 훈장 수여와 함께 후손에게 일정한 보상과 예우가 주어진다.
절차는? 공적 증빙부터 훈장까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은 다소 까다롭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박 씨 역시 조부의 이름이 등장한 1930년대 판결문과 함께, 당시 언론 보도와 구술기록을 정리하여 신청서에 첨부했다.
“판결문 하나 찾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조부가 활동한 지역 교회 기록과 지방지 신문에서 단서를 얻었어요.”

공적, 어디서 찾을까?
독립유공자 신청의 가장 핵심은 공적 입증이다. 단순한 가족 증언만으로는 부족하며,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준비해야 할 서류는?
신청서류는 포상신청서 외에도 다음과 같은 자료가 요구된다.
※ 증거자료는 2개 이상, 상호보완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청은 어떻게?
심사 기준 및 유의사항
심사 기간: 평균 12~24개월 소요
주요 기각 사유:
훈장 수여 이후의 절차는?
훈장 수여(건국훈장 등), 유공자 등록
유족에게는 보훈급여, 의료비 감면, 국립묘지 안장 등 혜택이 제공된다.
“이제야 내 역할을 다한 것 같습니다”
버지니아의 박민수 씨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이젠 할아버지를 역사 속에 되돌려놓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외면당하지 않도록, 후손들이 나서야 합니다.”
독립유공자 등록은 단지 보상을 받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후손으로서의 책임이자 국가의 예우를 이끌어내는 시작이다.
자료 문의:
국가보훈부 공훈심사과 | www.mpva.go.kr | 전화: 044-202-5500
재외국민신문(hiuskorea.com) 강인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