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일 9시간의 긴박했던 시간을 촘촘하게 그린 작품이다.
워싱턴, 뉴욕 등 미주지역에서도 동시 상영되고 있는 이 영화의 누적 관객은 현재 1,000만 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주인공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쥐려는 전두광(황정민 역)과 그에 맞서 군인의 신념을 지켜려는 수도방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역)으로 선과 악의 대결에서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의 정치적 욕망에 의해 결국 악이 승리하여 권력을 잡는다는 선과 악의 이분법이 분명하게 나타난 역사 이야기이다.
전두광, 자막에 한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 감독 머리 속의 한문은 全頭光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황정민은 매번 촬영마다 대머리 가발 분장에만 4시간 씩 소비했다는 소식이다.
감독은 불필요한 오해와 정치적인 논란 등의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서인지 세상이 다 아는 전두환이라는 본명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도 실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성수 감독은 시사회에서 “역사만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려워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 순간의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욕망의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이름을 바꾸고 하니까 이야기를 만들기가 자유로웠다”고 밝혔다. 즉 영화적인 상상이 가미된 작품이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 영화가 대박을 치자 김 감독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정치적인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서울의 봄’을 거론하며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쓰고 휘두르는 검사의 칼춤을 본다”며 현 정부를 군부독재에 빗댔다.
또 강남의 한 영화관이 ‘서울의 봄’ 상영 이벤트로 ‘두더지 잡기(전두광 머리치기)’ 오락기기를 설치하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을 이 영화관이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약방의 감초가 따로 없다.
이에 국민의힘은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민정부가 하나회 숙청· 전두환·노태우 구속 등을 이뤄냈고, YS정신을 계승한 것이 현 국민의힘이라는 주장을 하며 맞서고 있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의 3당 통합을 통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현재의 국민의힘이 됐다.
또 보수성향 유튜브채널 가세연은 서울의 봄을 ‘좌빨 역사왜곡 영화’라고 규정하면서 초등·중학교의 단체관람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가세연과 보수단체 자유대한호국단은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중학교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서울의 봄 단체관람을 결정한 학교 측을 비난하기도 했다.
12·12사건은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에서 기획된 조직적 군부 쿠데타로 세상이 다 아는 현대사이다.
전두환은 월남전 전후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자신의 양아버지로 삼았다. 그는 하나회를 조직하면서부터 포스트 박정희 시대를 대비해온듯하다. 10.26 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차기 권력은 당연히 아들인 자신이 이어받아야 한다고 결심하고 거사를 꾸민 것이 12.12 사건이다.
이 영화를 관람한 며칠 후 예비역 장군 A씨를 만나 영화 내용 중 팩트와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장군은 그 당시 거여동 3공수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었고 군인 사택에서 거주했다. 그래서 그는 반란군에 가담한 3공수여단 박종규 대대장과 진압군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지키다 숨진 김오랑 중령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3공수가 체포하러 왔을 때에는 쿠데타 상황이 거의 종료된 시점인데 정병주 사령관은 왜 굳이 총격전을 벌려 훌륭한 군인 하나를 적탄도 아닌 아군의 총탄에, 그것도 친구의 총에 희생되게 하셨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즉 총격전이 벌어지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전수전 다 겪은 그분이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회는 육사 각 기수에서 엘리트들로만 뽑아 충성을 맹세하게 했다”면서 “그들은 자신의 실력과 선배들의 요직 대물림으로 항상 노른자위만 차지하면서 승승장구 했다”고 했다.
A 장군은 “영화에서 보듯, 진압군 측 각 부대 영관급 장교들이 반란군 소속 장교들의 동기이거나 선후배다. 사령관이 출동 준비를 지시해도 반란군 측 연락을 받은 실무진이 ‘출동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막는 것이다. 그것이 전두환이 하나회를 만든 목적이었고 그날 그를 배짱이 두둑하게 만든 요인이다”고 했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나면 진압하라고 서울 근교에 주둔시킨 진압군이 되려 반란군이 되었으니 전두환 측의 승리는 따논 당상이었다고 했다.
그는 장태완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갔다. 그는 “그날 밤 최악의 상황에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부분이 너무 갑갑했다”고 했다.
전두환의 움직임에 위기의식을 느낀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학맥으로 연결되고, 군 생활도 같이한 그를 믿고 수경사 사령관으로 임명하자 그는 영화에서처럼 바로 하나회 조직 파악에 들어갔다. 물론 하나회는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참고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과 김진기 헌병감은 흔히 갑종으로 불리는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규 육사 출신 하나회와 갑종 출신 간의 대치로 보고 있기도 한다.
그는 그날 밤 장태완 장군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연희동 전두환 생일잔치(요정 민마담 관여)에서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는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것과 천호대교를 미리 막지 않아 3공수가 광화문으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음을 꼽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극 중에서 사실을 벗어난 허구 부분에 대해서도 전했다.
1. 극 중에는 아군끼리 교전으로 사병들의 사상자가 많은 것처럼 나오는데 픽션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망자는 3명으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중령(사후 1계급 추서), 50헌병중대 정선엽 병장, 수도경비사령부 33경호대 박윤관 일병이다. 그리고 부상자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포함하여 모두 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2. 광화문 앞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의 1대1 대치 상황이 나오는데 이것도 허구이다.
3. 행주대교를 건너는 부대가 2공수여단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1공수여단이 행주대교를 넘어 서울로 진입했고 이 과정에서 이태신 장군의 탱크 앞 육탄 저지 사실도 없었다.
4.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것인가? 이태신 장군이 대포를 반란군 본부가 있는 경복궁 30경비단으로 향하게 하여 발포 준비를 시키는데 이 또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영화 속 노재현 국방부 장관은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자 상황 파악도 안 하고 도망쳤다 새벽에야 나타나 “나 많이 찾았냐?”라는 속 터지는 인물로 묘사됐다. 노 장관 가족이 영화들을 상대로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12.12 사건은 실제로 반란 과정에서 큰 전투는 벌어지지도 않았다. 영화가 묘사한 것처럼 계속 통신으로 상황 확인만 하다가 끝난다.
국방부는 12일,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반란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군사반란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국민들 특히 MZ세대들을 안심시켰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었기에 영화에서처럼 군 통신망을 장악하여 승리할 수 있었겠지만 개인 휴대폰까지 장악하기 어려운 지금은 더 이상 그런 군 쿠데타는 없다고 봐도 되겠다.
(서울=하이 유에스 코리아) 강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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