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국 방문 첫날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랜딩 하자마자 화장실을 들러 서서 용변을 보는데 갑자기 발 앞으로 대걸레가 쓰윽 지나갔다. 깜작 놀라 돌아보니 여성 청소원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외국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외동포들, 특히 재미동포들은 모국방문을 할 때마다 접하는 한국의 화장실 문화가 익숙치 않아 당황할 때가 많다.
한국에는 아직 남녀 공용 화장실이 많다. 그래서 들어가기가 민망할 때도 있고, 여성들은 화장실이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남녀 공용화장실은 서울 강북이나 대한민국 부의 상징인 강남에서도 아직 많이 있다. 사무실 환경이야 우리 같은 재미동포들과는 상관이 없지만 많은 식당 화장실은 아직 윗 층이나 다른 옆 빌딩 공공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우리가 종종 화장실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 사건 보도를 접하는 것은 주로 이런 남녀 공공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여성들, 특히 재미동포들에게는 밤늦은 시간 식당에서 화장실을 가는 건 두려움이 앞선다. 모든 국민의 공분을 샀던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6년이나 지났는데 남녀공용 민간 개방화장실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아직도 서울에선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이런 황당한 일은 대한민국 정치 심장부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겪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의원회관조차 여성 청소원의 남자 화장실 청소는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고 있었다.
“저기 혹시 남자 청소원들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그 여성 청소원은 “시급은 똑같지만 주로 여성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면서 “때론 낮 부끄러운 일도 많이 일어 난다”고 인권 문제를 호소했다.
이런 상황은 공항이나 국회 의원회관뿐만 아니었다. 지하철, 병원, 대학교, 회사 등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서는 매일 여성 청소원과 남성 이용자 간의 민망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 재미동포들이 모국을 방문하게 되면 항상 접하는 불편함과 위험한 요소는 식당이나 사무실 입구의 한 계단, 투스텝의 턱과 한국의 화장실 문화이다.
특히 미국식 안전 위주의 건축 환경에 익숙한 동포들은 턱이나 계단에 걸려넘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모국방문 일정을 망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의원회관 여성 청소원에 따르면 공중화장실을 관리하는 여성 청소원은 보통 1시간에서 수 시간 간격으로 남자 화장실을 청소한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들과 하루에도 수 차례 접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에게는 근심을 해결하는 ‘해우소’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애매한 상황 때문에 서로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장실 이용 남성과 여성 근로자의 인권 문제이다. 그동안 당연시해온 이 같은 잘못된 관습을 ‘인권보호’ 차원에서 법으로 속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인권 문제뿐이 아니다. 극히 사적인 영역의 화장실을 남녀가 공용으로 이용하며 생길 수 있는 각종 문제와 사고를 예방하고 K-문화의 안전한 화장실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