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평양대부흥이 미국 시카고 근교 에서 의 젊은층의 선교운동에 기인하여 부흥했던 미국 대각성 운동의 연장선으로 보았을 때 중국 산동등 화북지방의 대부흥은 평양대부흥과 직간접 연관이 된다.
1807년 로버트 모리슨 스코트랜드 선교사가 중국 마카오에 입국 , 중국어성경 번역, 영중사전과 복음 신문 등 문서 선교를 시작 한 것이 근대 중국 기독교의 시작으로 보면 영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그리고 중국에로의 복음의 불꽃은 이어져왔다.
중국은 주변 20여개 국가와 국경 을 맞대고 있는 방대한 나라이다. 중국은 경제 급성장에 힘입어
현재는 제3국가의 종주국 위치에 있어 아프리카와 아랍권 등 개발도상국에 경제원조로 활동범위를 넗혀 가고 있다.
이제는 군사적 으로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미국과 맞수를 둘 만큼 성장해서 오히려 러시아를 제 낀 지 오래되었다.
2007년 한국 분당 할레루야 교회에서 있었던 선교중국 대회는 더이상 중국이 피선교대상국으로 머물기보다 세계선교에 동참하는 위치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북미주에서는Ambassador for Christ 사역기관이 50년넘게 중국 유학생 교수 등을 대상으로 전도, 성경공부 그룹 등 지원과 4년마다 북미주 청년 복음대회를 미주 각 지역을 돌며 개최해왔다.
그리고 토마스 왕 ( 왕영신: 王永信)목사가 문서사역과 단기훈련 사역 구제사역 등을 담당해왔다.
또 조나단 챠오 목사(조천은 赵天恩)가 중국복음선교회 ( China Mission Institution )은 중국 기독교 연구기관으로 오랜 기간 사역을 담당해왔고 그 밖에 세계 중국인 복음 협의회 cccowe.org , 화인복음 보전회(华人福音普传会:간칭: 화전 华传)는 해외 신학교육 , 신주전파협회 (神州传播协会)는
시청각 전도 자료 등 문서사역들을 분담해왔다. 그 밖에 CCC 미국 중국인사역회가 있고 많은 해외와 대만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등 사역기관이 있고 이제는 중국본토에도 자생 신학교가 많이 생겼고 온라인 강의도 많아 졌다.
1911년 중화민국 건국일이 10월10일인데 그 이듬해인 1912년 한국 서울 서소문에 북감리교 챨스 데밍 선교사 부인 데밍 선교사가 중국 산동에서 신앙으로 인해 부친의 핍박을 피해 외삼촌을 따라 한국에 입국한 한의사 차도심 장로가 만나 중국인들을 위해 새문안교회에서 기도로 시작해 정동감리교회와 YMCA의 도움으로 개척했던 화교교회가 지난주 10월10일 110주년 기념예배를 개최했다.
한국전쟁후 중국 목회자가 없어 한때 동북이나 화북신학교에서 공부했던 한국인 사역자들이 화교교회를 목회하였으니 서울교회에 백영엽, 주관준, 김응삼 목사, 백성결, 박부옥 전도사 80년대후에는 김부옥 선교사, 서강 목사. 인천화교교회는 이만열, 전창길, 김교철 선교사가 맡았고 유신우 , 이장현 목사. 수원에는 김학천 목사, 김교철 선교사, 대구화교 교회에는 홍대위목사(대구 교회 ), 박부옥 전도사. 영등포 화교교회에서는 김응삼 목사, 군산은 박야운 전도사, 이순구 선교사 등이 중국 화교에서 한국인으로서 사역을 감당해왔었다.
한.중 양국 교회의 효과적인 선교동역은 시대적으로 중요한 과제이며 선교 국가의 차기 주자로서 등장하는 나라중에서 단연 강세이다. 기독교 인구뿐 아니라 인도, 필리핀 ,브라질등 보다 앞서고 있다. 그리고 세계 각처에 퍼져있는 화교 신이민 세대중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사역자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해외 한인 교회와는 대조적이다.
한국내에서도 새문안 교회,서울 강남 사랑의 교회 등 지방까지도 대형 교회마다 중국어 예배부가 운영되어 있고 중국인 헌신자들이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다.
양적으로 물량적 성장을 해왔던 한국교회의 사양화 축소현상과 젊은 층 교회 이탈 현상, 신생아 감소 인구현상 등 교회는 안팎 으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중국은 한국의 부흥과정과 그 중에 문제점을 파악해 타산지석 삼아 중국 기독교의 부흥을 추구하고 있다.
평양대부흥의 재현이 한국에서 또 중국에까지 다시 연결되어 한국과 중국이 한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선교 동역이 이루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평양 대부흥이 길선주 장로 등 당시 지도자들과 서양 선교사들간의 갈등과 알력으로 틀어져 있을 때 성령의 강한 역사하심으로 주 안에서 하나 되는 회개 체험이 한국 교회와 중국 교회의 물질 만능화로 자칫 세속화 되어가는 중국 교회에 다시 한번 강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24호(실제는 26회)로서 중국선교 단상을 맺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회답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문의 사항은 [email protected]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필자 약력 소개
서울 중구 평동 화교 밀접 주거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서대문초등학교 근처에 서울 화교교회가 소재하여 6년을 교회 앞을 지나 통학을 했었고 1974년부터 펜팔을 통한 독학으로 중국어공부를 시작, 75년 대입 예비고사에사 중국어를 외국어 선택으로 시험 치뤄 수준을 자가 평가받았고 성균관 대학 중어중문과를 1980년에 졸업 국립 대만 사범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문학석사학위를 취득후 당시 한중 미수교로 중국 본토 유학이 어려워 일본 동경으로 전학하여 박사 전 과정을 동경 도립대학에서 이수하던중 대학 후배 소개로 동경 품천교회(品川)에 첫 예배에서 깨어져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인정한후 한국에 귀국해 한국어를 못하는 대만인 처로 인해 서울 정동화교교회에 가입. 18년을 섬기다가 중국복음선교회 초기회원과 부설 중국선교사 훈련원 사역중국어 강사를 역임했고 인천 재능대학 무역중국어 강사를 역임했다. 영국 WEC 국제선교회 인천지부 실행이사로 섬기다가 2007년 8월에 도미했다.
1991년 전국직장선교대학수료및 파송. 1994년 마닐라 Alliance Biblical Seminary . 1995년 Singapore Bible College
2010 년 버지니아 침례신학교 수학.
1995년 마닐라 한인 침례교회 ( 현 목양교회) 주파송, 필리핀 중국인 성경교회 (Chinese Bible Church of the Phillipines) 협력파송
(주)대우 건설부문과 무역부문 해외 투자사업실에서 중국사업을 담당했고 경기도청 국제협력실 국제교류과와 외자유치과에서 근무하고 1998년 IMF 때 KOTRA 내에 설치되었던 외자유치 정부 통합 센타 상담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국제 무역 투자 업무와 정치 행정 기관에서의 가교 역할로 활약하다가 2007년 8월이후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며 선교동원과 연구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2008년에 중국선교 세미나를 시작으로 스프링 필드에 소재하는 Immanuel Bible Church 내Chinese fellowship Bible leader 로서 2008년 10월부터 2년여 섬겼고 위싱톤 중앙 장로교회에서 2010년부터 2년간 중국선교 강좌를 개설운영했고 한중성경으로 중국어 성경을 선보여왔다.
미드웨스트 신학교를 빌려 중국선교 크래스를 운영 증서를 발행했었다.
현재 미국 초기 한인 사회정착 과정에서의 교회의 역할과 성장 역사를 연구중에 있고 중국인 교회와 일본인 교회 역사도 병행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