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각 지역의 한인회를 대표하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존칭 생략)가 다시 두 조각이 나고 있다.
‘정통 미주총연’이라고 주장하는 제29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발부받은 전 중남부 연합회장 정명훈이 이달 23일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취임식을 준비하면서다.
이로써 최근 산고의 진통 끝에 통합을 이룬 미주총연은 정명훈의 ‘정통총연’으로 ‘혼란의 도가니탕’ 속에 빠지고 있다.
현재 ‘통합총연’ 단톡방에는 적군이 이미 쳐들어 왔는데도 최고 지도자들은 아무런 비젼을 제시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고, 3개 계파 간 서로 헐뜯는 말들이 오가면서 “제명처분 한다”는 경고장만 난무하고 있나 하면 때아닌 좌·우 진영 논리로 지역 문제까지 소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단톡방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 왔는데도 동인, 서인으로 나뉘어 극렬한 당파 싸움만 일삼은 망하는 조선을 보는 듯하여 씁쓸한 심경이다.
일각에서는 ‘자승자박’이라는 말도 나온다.
통합이라는 ‘허울’ 속에서 지도자들은 3개 계파 간 화학적 통합에는 노력하지 않고 따로 국밥처럼 자기 정치만 하여 적에게 공격할 빈틈을 줬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정치를 했다 함은 통합한 지 반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3개 단체가 따로 등록되어 있는 점, 가장 중요한 재정이 일원화되지 않고 있다는 점, 조직 인선과 회칙 개정을 완료하여 활기차게 사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꼽고 있다.
어쩌면 이번 ‘정통충연’ 출범의 단초를 제공했을 수도 있는 8개 광역연합회와의 관계 정립을 위한 소통부재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국승구 회장은 지난 5월 베가스 임시총회 인사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여러분과 소통하면서 미주총연의 긴 흑역사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최우선 과제인 광역연합회장들과의 소통하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분열된 연합회에 분열의 골만 더 깊게 만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정말 이 지긋지긋한 미주총연의 흑역사를 끝낼 방도는 없을까?
바둑에는 복기라는 게 있고, 또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미주총연과 미한협, 다시 2개의 미주총연과 미한협이 연합한 ‘통합총연’, 그리고 ‘정통총연’의 출현. 마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이 시국을 끝내기 위해 함께 미주총연의 긴 흑역사를 복기해 보자. 혹시 그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 국승구·정명훈의 데자뷔
미주총연 흑역사의 시작은 제26대 이정순·김재권 때부터이다.
2015년 5월 이정순 25대 총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미주총련 집행부와 반대파인 미주총련 조정위원회가 각기 다른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정순과 김재권 전 이사장이 각각 26대 총회장으로 당선됐다고 주장하면서 미주총연의 분열이 시작된다.
소송으로까지 번진 이 사태는 2016년 3월 김재권이 승리하여 법에 의한 26대 총회장이 된다. 이때 양측의 최측근이 정명훈과 국승구이다. 정명훈은 그당시 법정이 있는 페어팩스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김재권 총회장은 다시 제27대 미주총연 회장으로 인준된다. 그러나 조정위원회는 김재권 총회장 ‘직무정지’를 결정하고, 임시총회를 열어 제27대 회장으로 박균희 전 총연 이사장을 선출했다. 이후 김재권, 박균희 양측은 법정 싸움을 휴전한 채 잠시 공동총회장 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 죽은듯 다시 살아나는 ‘그루터기’ 조정위원회, 그 끈질긴 생명력
제28대 임기가 끝나자 조정위원회는 선관위를 구성하고 단독 입후보한 김병직 회장을 당선시킨다. 김병직은 2021년 12월 버지니아 페어팩스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 취임식장에는 박균희 직전 회장이 보이지 않았고 ‘옥쇄’로 통하는 회기를 전달 받지 못했다.
그후 김병직 총회장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조정위원회는 다시 선관위를 구성하고 국승구 회장을 당선시킨다. 국승구는 올해 2월 콜로라도 덴버에서 취임식을 거행했다.
그런데 이 취임식장에도 박균희 회장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이미 김병직, 국승구 두 총회장은 27대로부터 적통(嫡統)을 이어받지 못한 서자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길 떠나는 홍길동처럼.
통합 자체를 불법으로 본 박균희와 조정위원회는 ‘제29대 통합미주총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신문 지상으로 꾸준히 제기하면서 또다시 이정순을 위원장으로 하는 3차 선관위를 구성하여 정명훈을 당선시켰다.
현재 많은 회원들이 아쉬워 하고 있는 부분은 신문 지상에 공고가 나왔을 때 왜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나 하는 것과 덴버 취임식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균희 총회장을 참석시켜 적통성을 인정 받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23일이면 짝퉁·적통·정통인지 또 하나의 미주총연은 탄생한다.
선거공고가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무시 작전’을 펼치고 있는 공동 총회장 중, 국승구 회장은 세계한인회장대회 미주지역 참가자들의 행사 준비를 위해 한국에 있고, 원래 외치를 담당하기로 했던 김병직 회장은 워싱턴에서 홀로 조용하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해도 언젠가는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은 회원들은 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주총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 해봐도 답은 다음 네 가지 안에 있는 것 같다.
1. 미주판 을사오적들에 의해 45년의 역사를 마감한다. – 미주동포사회를 대표한다는 허울 속에 관심 있던 동포들 조차 긴 싸움에 식상하여 등을 돌리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라면 미래가 없다.
2. 소송으로 법원 명령이 있을 때까지 식물단체가 된다. – 일국에 두 대통령이 있을 수 없기에 결국 사법부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
3. 단체가 두 개, 세 개가 되든 마이웨이를 외치면서 ‘각자도생’한다. – 한 지붕 세 가족, 네 가족 지역 한인회들도 많이 있다. 대통합이 될때까지 그렇게 다음 세대까지 흘러 간다.
4. 자칭 정통총연과 다시 대통합한다. – 엄격한 회칙의 잣대에 자유로울 전현직 총회장은 없다. 아무리 완벽한 회칙이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한 흑역사는 계속되겠지만 계속 통합을 시도한다.
미주총연이 위 네 개 문한 중 어떤 길을 걷든지, 운명은 결국 회원들의 선택에 달려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원들이 주인이니까.
하이유에스코리아 강남중 대표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