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은퇴 후에 한국에서 나머지 삶을 보내는 재외동포들이 많다.
처음 이민을 결정할 때 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들이 역이민을 선택하는 데는 가족과 죽마고우(竹馬故友)들과의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과 그리고 언어와 문화적 정서, 그리고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는 모국의 의료·복지제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23하동세계茶엑스포’ 기간 중 경남 하동에서 은퇴 후의 삶을 즐기는 박학수 전 인랜드한인회장(전 미주총연 부회장)을 만났다.
1953년 생인 그는 인하공대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에서 강철인의 삶을 살다 1980년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민했다. 필라델피아 커뮤니티 칼리지를 수료한 그는 1988년 켈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정착해 세탁업, 무역업, 부동산업 등에 종사하면서 ‘제16대 인랜드한인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사회와 동포사회에 봉사했다.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출가하고, 은퇴할 나이에 접어들자 남은 여생을 모국에서 보낸다는 계획을 미리 세운 그는 2016년 이곳 하동 평사리 근처에 전원주택을 건축했다.
그의 집은 평사리 ‘악양농업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최참판댁'(박경리 소설 토지) 맞은편에 위치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운치가 있어 보였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서울인데 어떻게 하동에 터를 잡았나”라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한국 차의 중심지이자 지역화합의 땅인 구례·하동을 사진기를 들고 여행하다 보니 좋은 공기가 내 영혼을 맑에 해줘서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 장터엔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마을 구례 사람 닷새마다 어루러져 장을 펼치네”라는 조영남 가수의 ‘화개장터’가 있는 곳이고, 하동차 한잔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분명 머리가 맑고 덜 피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공기를 파는 회사인 ‘지리에어 JIRIAIR’라는 현대판 봉이김선달 회사가 성업 중인 것만 봐도 지리산 공기가 얼마나 상쾌한지 알수 있고 박학수 회장이 왜 이곳을 선택하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일 년 내내 이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녀들이 있는 미국을 왔다 갔다 하지만 그의 집은 이미 미주동포사회 지인들의 사랑방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나올 때마다 이곳에 들러 휠링하고 간다는 어느 미주총연 회원은 “외롭게 있을 친구를 위해 함께 있어 주려 왔다”고 웃으면서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그는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은하수를 찾아다니는 이원규(61) 지리산 시인이 있었고 동네 주민들과도 차와 막걸리로 정을 나누고 있었다.
무엇보다 낙후된 하동차 문화를 위해 ‘홍보대사’가 되어 민간공공 외교관 역할을 담당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그에겐 외로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번 ‘하동차엑스포’에도 모국방문 중인 미주지역 한인회장 20여 명을 참가시켜 ‘하동차 세계화’에 한몫을 담당했다.
박 회장은 “깊은 산과 섬진강에서 만들어진 이슬을 먹고 자라는 하동차는 천년의 향기와 맛을 간직하고 있어 영혼을 맑게 해주고, 산나물 중심의 식탁이 나를 건강하게 해주고 있다”면서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 심신이 지친 여러분들의 방문을 양손들고 환영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