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사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 성장한 한인최초 미주한인교회, ‘하와이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미주지역 최초의 한인 교회는 하와이(Oahu)에 1903년 11월 10일 설립된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이다. 그래서 이 교회 앞에는 항상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와 ‘미주한인 장자교회’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지난 1월 13일 있었던 ‘미주 이민 120주년 기념식’ 취재차 방문한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그렇게 미주한인 이민역사와 그 궤를 같이하면서, 이민 종가 하와이와 미주 동포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교회 한의준 담임목사는 “해외 최초의 한인 교회로 해외 이민 역사의 첫 시작을 연 이민자의 삶의 애환과 믿음과 신앙을 십자가에 담는 교회이다”고 소개하면서, “저희 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구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믿는 것이 참 행복한 교회이다”고 했다.
한의준 목사(59세)는 2016년부터 제22대 담임으로 파송되었다.
기자가 이날 살펴본 주보에 의하면 주일에는 한어 예배 3부와 영어 예배 2부,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가 각기 예배와 모임을 갖고 있었고, 해마다 장학사역부가 5만여 달러의 장학금을 조성하여 차세대 지도자 육성을 위한 수여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교회(사도행전 2:17)’ 답게 러시아, 몽골,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케냐, 브라질 등 20여 개 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협력 선교를 하고 있었고, 40년 동안 조국독립을 지원하고 독립운동가 37명을 배출한 교회답게 북한선교 사역도 감당하고 있었다.
“현재 한인교회는 젊은 세대들이 찾지 않아 노인세대들이 많은 역삼각형 구조가 되어가고 있는데 목사님 교회 사정은 어떠한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우리 교회는 오히려 30,40대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어 세대가 바뀌어도 이어 나아갈 수 있다”면서 “현재 등록 교인은 1200명 정도이고 매주 출석 성도는 800여 명 정도이다”고 설명했다.
다른 여느 이민교회가 그렇듯 교세가 성장하면 분열되거나 분가하게 마련인데 그리스도연합교회 역사는 어떠한지? 라는 질문에는 “1903년 20명의 성도로 ‘한인감리교선교회’란 이름으로 시작하여 1916년 제일한인감리교회로 개칭할 당시 성도 수가 180명이었다”면서 “1918년 이승만 박사(장로, 당시에는 탁사)가 ‘한인기독교회’를 개척해 나가자 순식간에 교인 수가 60명으로 줄어드는 고초를 겪었다”고 전했다.
현재 미주한인 개척교회의 형편을 감안할 때, 동포사회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한 그 당시에 10여 년 만에 급성장을 한 교회도 그런 고통이 있었던 것이다. ‘한인감리교선교회’가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로 변경된 것은 1965년이다고 한다.
교회 내분의 아픔은 또 있었다.
1998년, 1950년 2월 건축했던 옛 교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 성전을 건립하였다. 그런데 565석에 달하는 지금의 예배당(100주년 기념성전) 건축 당시 건축 문제로 분쟁이 심각했다. 그러나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 그리고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아홉길사랑교회(김봉준 목사) 등의 기금 행렬이 이어져 150석의 내리채플(인천 내리교회 기념)도 함께 헌당할 수 있었다.
한 목사는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이 땅에 첫 발을 디딘 이민선조들이 교회를 개척 할 당시의 교회 역할을 생각해 볼 때, 이민교회는 지역사회와 성도들의 이민생활 삶의 중심에 자리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서로 다름 속에 발생하는 교회 내의 여러가지 문제와 상처들도 신도들 각각의 ‘치유의 백신’으로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으로 소망 했다.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는 100주년이 되던 2003년 ‘백년 역사’를 사진으로 담은 책자를 발간하여 기록하고 있다.
1901년 조선에 대기근이 들어 굶어 죽는 백성이 많아지자 당시 왕실 주치의 였던 알렌 선교사가 고종의 허락으로 황성신문에 ‘하외이 이민 모집 광고’를 냈다. 그렇게 모집된 121명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다.
그때 이들의 통역관으로 함께한 사람이 인천내리교회 장경화 전도사, 안정수 권사, 홍승하 전도사 등으로, 호놀룰루로 오는 동안 배 안에서 전도와 예배 사역이 시작되어 1903년 11월 10일 호놀룰루 다운타운 리버와 호텔스트릿 모퉁이 작은 집 2층 다락방에서 해외 최초 한인교회 탄생으로 결실을 맺게된다.
하와이 이민은 1903~1905년 사이 64회 출항에, 7천415명이 새 삶을 꿈꾸며 배에 올랐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엔 이승만 서재필 등 독립운동가들이 한인사회에 합류했다.
1904년 말경 20명의 성도가 정식 등록했고 이들은 후에 켈리포니아로 이주 하면서 미주 본토 한인 선교 시작을 알렸다.
이민 2세들이 몰려오자 1930년 변홍규 목사가 이중 언어로 설교했다. 이는 지금의 한인교회의 이중언어 사역의 시작이자 모델이 되고 있다. 그리고 1932년 변홍규 목사가 만주로 선교를 떠나면서 미주 최초의 해외 선교사 파송으로 기록되었다.
1947년 키아모쿠 스트릿에 지금의 성전 터를 마련하게 됐고, 1952년 이동진목사의 부임으로 영어와 한국어로 분리된 회중을 다시 하나로 모으고, 1958년 교회가 목회자들의 봉급을 완전히 책임지면서 자립교회가 되었다.
1965년이후 본격적인 새 이민1세들의 유입이 늘어나며 1970년부터 교회는 새 이민 한국어 교회가 되었다.
1971년 박대희 목사, 1981년 이응균 목사에 이어 1988년 부임한 김웅민 목사가 지금의 새성전 100주년기념 성전공사를 시작, 완공했다. 그리고 이은철, 김낙인 목사에 이어 2016년 한의준 담임목사가 부임하며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성전을 지역사회에 적극 개방하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이민교회의 새로운 역할기대를 높여가고 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창립 119주년 기념예배를 11월 6일(주일) 1-3부 예배시간에 드렸다.
한의준 담임목사는 이날 “119년 전 믿음의 선조들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이민 왔다. 정든 가족과 고향을 떠나 최초의 이민 선조들이 이곳에서 피땀흘려 일할 때 그들의 가슴속에는 눈물과 고통이 내재되어 있었다”면서 “성령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품어 주시고 그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안식을 얻었다”고 설교했다.
한의준 목사는 “믿음의 선조들의 눈물과 기도와 소망이 담긴 이곳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우고 싶다”며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이 교회의 권사로 하와이 이민 역사 전문가로 통하고 있는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이 하와이 지역 독립운동사적지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표지판을 설치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한국에서 방문한 권성동, 김무성, 황보승희 등 많은 정치인들도 함께 했다.>
<이 교회에서 있었던 '하와이 이민 120주년 기념식 광경. 이 자리에는 하와이 정치인들과 한국에서 온 정치인들 포함 3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미주동포사회에서는 미주총연과 서남부한인연합회 소속 회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맨 왼쪽)이 관심을 갖고 이 교회 역사 자료실을 둘러보고 있다.>
하이유에스 코리아 강남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