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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교 단상 컬럼 21회 [해외 한인 교회 역사와 중국인 교회]

이민우 선교사

해외 한인교회 역사는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했던 일본과 중국 교포들이 중심으로 했던 교회가 먼저이고 그후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밭 노동자로 인천 내리교회 출신들이 많이 섞인 초기 이민자들이 교민 생활의 활동 중심지로서 한국어 등 문화를 전승하는 장으로서 교회가 자연스럽게 역할을 해왔다.

일본은 임오군란때 민비를 구하고 진압한 공로로 일본에 파견되었던 무관 이수정이 일본에서 체류하는 동안 서양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여 첫 신도가 된 후 성경 번역을 하여 조선인들이 모이는 적은 모임이 시작되었고 그때 번역된 부분 성경이 바로 아펜젤라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 할 때 가지고 입국한 부분 신약성경 이었다.

당시 일본에 머물렀던 조선 관리가 많아 기독교를 접한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당시 기독교가 금지된 종교였기에 귀국후에도 몰래 신앙을 유지했던 것 같다.

한편 중국 요녕성 심양(당시명 봉천) 서탑교회 부근에서 활동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한인 서적 보부상들을 통해 신약성경 일부가 번역되기 시작하여 쪽 복음이 황해도 에 들어왔고 평북 평양 등지에 퍼지게 되었다. 지금도 동관교회에 당시 번역됐던 신약성경이 전시 되어있다.

그래서 서상륜 에 의해 소래 지역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아펜젤라와 언더우드가 입국하기 몇 년 전에 이미 조선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그리고 평양의 장대현 교회가 세워지고 서양 선교사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병원, 학교, 고아원 등 교회와 함께 구제사역 , 교육사역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때 영국 청년 선교사 토마스가 대동강에서 통역관으로 동승했다가 대치 중 조선 군병들이 마샬호에 방화를 하자 탈출과정에서 붙잡혀 참수를 당하는 과정에서 가지고 왔던 성경을 던지며 예수 이름을 부르며 참수를 당했고 그때 참수형을 행했던 박 춘근이 후에 회개하고 그 사건을 조사 왔던 마펫 사무엘( 마포 삼열) [존 로스 성경번역 선교사. 권서인(劝书人)보부상]가 당시 묵던 여관 방벽에 성경으로 도배된 것을 발견했던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역시 그 박해사건을 조사 할 때 통역으로 도왔던 차도심 장로 (서울 화교교회 창림멤버 2회때 소개한바 있음)의 기록도 남아있다.
강화도에 교회가 많은 것도 당시 해로로 진입하기 용이해서 였던 것 같다.
평양의 대동강과 인천 강화도 등 해로 도시에 기독교가 진입 되었다.

미국 하와이에 이민 온 농장 노동자들은 어차피 조선이 일제에 합병되자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에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커뮤니티 중심에 한국어 교육 등 후세 교육에 교회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독립자금도 모아 위싱톤이나 상해로 송금하고 만주의 독립군 자금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하와이 감리교회사에 의하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기록도 남아 있다.
후에 점차 샌프란 시스코 본토로 이주를 하여 당시 미개척지였던 미국서부지역부터 거주하다가 전역으로 퍼진 것은 유럽인들이 뉴욕지역에 이민 온 루트와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 뉴욕이 유럽에서 가깝고 한국 중국 일본은 서부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처음부터 어느 정도의 복음을 인천 내리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많아 초기 교회가 세워 질 때 부터 양상이 제일 처음 미국에 온 일본인, 중국인들과는 달랐다.
일본인들은 당시 외화벌이로 이민 와서 단기간에 일본으로 귀국하려는 자들이 많았고 원래 불교 도교 등 혼합종교가 많았던 일본인들은 교회가 잘 세워지지 않았고.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귀국하려던 사람들이 많다가 점차 계속 남아 있는 비율이 늘어나게 되었다.

140년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수도 워싱턴 지역에 체류 외교사절이 늘었고 120년전 부터 하와이에 대거 입국하여 교회들이 세워졌으나 일본인 교회 숫자는 미미했고 중국인 교회들도 미미했다.
중국인 교회가 점차 늘기 시작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시대부터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 교회 자료는 마이크로 필림으로 당시 신문기사가 많이 남아 있다.
필자는 아시아 주요 3국의 초기 이민 사회 정착역사와 교회의 발전상 등을 연구해왔다.
한국 교회들은 어느정도 수집이 되었으나 중국 교회자료는 현지답사를 해야 할 필요가 남아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기의 한인 교회안에 중국인 교회 모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미국 기독교 단체들이 중국인들 소수민족들 대상의 선교후원들을 많이 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다음호에는 해외 한인 교회와 화교교회의 동역 을 다룹니다. 많이 기대해주시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문의사항은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