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뭔가 특별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감사거리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하게 여기며 무덤덤한 마음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특별한 일은 어쩌다 일어납니다. 나날의 일상이 곧 기적입니다. 굶지 않고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걸 감사해야 합니다. 나라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지내는 것도 당연하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가족을 잃거나 뿔뿔이 흩어지고 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 것을 볼 때 평안한 중에 큰 탈 없이 지내는 무탈한 삶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각종 사건과 사고를 대할 때마다 무사무탈한 일상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강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중병에 걸렸을 때 최첨단 의술로 수술을 받을 수 있고, 새로 개발한 신약을 복용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덕분입니다. 요즘 100세 장수시대를 맞이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일반은총의 덕분입니다. 옛날 같으면 죽었을 병도 요즘은 쉽게 고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치유력으로 인해 병이 낫기도 하고, 백혈구가 치열한 희생정신으로 병균과 싸워주는 덕분에 병을 예방하기도 합니다. 일정한 소화과정을 통해 필요한 영양분은 섭취하고 나머지 찌꺼기는 배설하는 배변활동과 배뇨활동도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활동들이 원활치 못해 특수한 의료장비를 장착하거나 특수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래서 늘 불편하고 불안한 일상을 보내야 하는 자들을 생각해 보면 원활한 배뇨배변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체에는 약 60조 개의 세포가 있는데, 이 미세한 세포 하나에 정보처리, 발전소, 물류센터, 쓰레기 처리, 방역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방들이 있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줍니다. 세포 하나의 기능을 책으로 쓴다면 수천 페이지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정밀하고 세분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인체 자체가 기적의 산물이요, 우리가 바로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감사를 해야 할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혈관의 길이는 약 12만 킬로미터로 지구 세 바퀴 길이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핏줄 가운데 한 군데만 막히거나 터져도 생명의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우리 몸이 얼마나 신묘막측하게 창조되었는지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를 지으신 것이 너무나 오묘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 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가 가공할 만큼 놀라워 모골이 송연할 정도이며,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경외감이 우러나오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하여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삼중고의 헬렌 켈러 여사가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글이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흘 동안 매일매일 할 일들을 계획해서 사람들도 만나고,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가보고, 연극과 영화도 관람하고, 아침의 동트는 모습도 보고, 하루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 그들의 사는 모습을 체험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헬렌 켈러 여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했던 것들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성한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제한으로 즐기는 물과 햇빛과 공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물은 우리 몸의 70%를 차지합니다. 물이 있어야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만일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햇빛이 없다면 식물이 자랄 수 없고, 식물이 자라지 못하면 곡식도 거두지 못하고 가축도 먹일 수 없으니 결국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감사가 아니라 일상감사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일은 가물에 콩 나듯이 어쩌다 일어납니다. 어쩌다 먹는 별미 특식이 아니라 늘 먹는 ‘그 밥에 그 나물’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에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왔다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자가 진정으로 ‘소확행’(小確幸)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없는 것으로 불평하지 말고 있는 가진 것으로 인해 감사할 때 우리는 진정 자족할 수 있고, 자족할 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93세 되시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폐가 안 좋아져서 병원에 이송되어 24시간 동안 산소공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상황이 호전되어 퇴원수속을 하는데, 치료비가 프랑스 돈으로 자그마치 50만 프랑이나 나왔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의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면서 계산서 때문에 괴로워하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답이 이러했습니다.
“저는 계산서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는 당장에라도 치료비를 완납할 수 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고작 24시간 하루 동안 공급받은 산소 값이 50만 프랑이나 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저는 93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마시면서 여태까지 한푼도 돈을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그동안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게 부끄러워졌고, 또 산소를 무상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놀라워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감사의 조건들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복음성가가 생각납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데살로니가전서 5:17)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