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헤리티지 대학교(Washington Heritage University)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Coram Deo(코람 데오) 신앙

‘Coram Deo’는 라틴어 Coram(~의 앞에서)와 Deo(하나님, Deus)의 합성어로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in the presence of God”이라고 합니다. 삶의 매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전의식(神前意識)을 의미합니다. Coram Deo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그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굽어보고 계신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모든 일에서 진정성을 추구하고, 우리의 마음과 행위가 그분의 뜻에 부합하기를 바라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매 순간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람 앞에서’(Coram Hominibus) 혹은 ‘세상 앞에서’(Coram Mundo)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며 편향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시선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공정합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폐부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긴다면, 우리는 더 이상 외적인 겉치레나 사람의 인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내면적인 실속과 하나님의 인정을 더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Coram Deo는 예배와 같은 성역(聖域)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일상의 삶에까지 그 영역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사회에서의 정직한 행동, 직장에서의 성실한 노동, 가정에서의 사랑과 섬김,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의 진솔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하듯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노사윤리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보고 있을 때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자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이 구절을 대할 때 자칫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습니다. 마치 바울이 노예제도를 당연시했다는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종’은 영어로는 ‘servant’가 아니라 ‘slave’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노예제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는 리가 없습니다. 다만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Pax Romana시대, 시민보다도 노예의 수가 더 많았던 그 당시 시대적 배경 하에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방 그리스도인으로서 상전과 종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교훈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쨌든 이 교훈에 따르면, 상전이든 종이든 최고의 상전이신 주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신앙으로 처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행위를 판단하시고 그에 상응하는 상급을 주실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는 행동의 동기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기에 항상 주님께 하듯 하라는 교훈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코람데오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 본 구절의 취지입니다.

그런데 Coram Deo의 삶을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의 분주함과 끊임없는 사탄의 유혹 속에서 ‘아차’하는 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a man after my own heart)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정하신 자였습니다(사도행전 13:22). 늘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며 살았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한순간 하나님의 시선을 놓치는 바람에 영적 정전상태(spiritual blackout)가 되어 밧세바와 불륜의 죄를 범함으로써 그의 인생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끈덕지게 유혹을 했지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하면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침으로써 코람데오 신앙의 본보기가 되었으며, 적어도 성경의 기록상으로는 인생에 흠이 없는 삶을 살았던 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인격을 정의하기를, “아무도 보지 않는 가운데서의 자신이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담임목사는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범죄 스캔들로 인해 사임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 한 가지 사건만 보더라도 코람데오의 신앙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말한,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인간은 죄 짓도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는 말이 위로가 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용서의 근거가 인간의 연약한 체질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시편 103:12-14)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옳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기뻐 받으시며,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신실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코람데오의 신앙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