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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종말의 때를 대비하는 삶


이제 이틀만 지나면 2024년 올 한 해도 저물게 됩니다. 우리는 한 단위의 시간이 매듭지어질 때마다 결산을 하는 것이 거의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면 연말 결산을 하게 되고, 한 해 한 해가 쌓여 마침내 우리 일생이 끝날 때에는 인생 결산을 하는 날이 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면 인생의 종말을 예견하면서 그 종말의 때를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 조크 중에 “미국 시민이라면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세금이다”라는 조크가 있습니다. 죽음의 불가피성을 빙자해서 세금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9:27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런데도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중국의 진시황입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엄청난 영화를 계속 누리고 싶은 욕망에 어마어마한 아방궁을 짓고,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찾으러 신하를 제주도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수은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의관들의 권고를 따라 수은을 상복하다가 마침내 수은 중독으로 요절했다고 하니 얼마나 미련한 자입니까.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래서 항상 종말을 대비하는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지혜로운 삶이라고 전도서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7:2,4)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留心)하리로다...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은데, 그 이유인즉 우리 인간은 누구나 결국은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면서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한순간의 연락만을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터부시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듯이 장차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도 엄연한 현실임을 냉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큰 소리로 이 말을 외치게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고 일깨워주기 위해 생겨난 풍습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나바호 인디언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나 네가 죽을 때에는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라.“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준비를 하면 염려할 게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야 후탈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은 육신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개인적인 종말 이후에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 역사에 마침표를 찍으시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 종말의 때에 모든 인간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구원을 받게 되며,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첫 관문입니다. 반드시 이 구원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영원한 상급(reward)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일단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거기에서 우리가 영원토록 누릴 상급에는 차등이 있다는 것을 고린도전서 3장을 비롯해 성경 여러 군데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건없이 구원의 선물을 주셨지만, 공의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느냐로 상급을 판정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우리가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스스로는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은혜로 값없이 공짜 선물로 주셨지만 상급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 정성껏 하나님을 섬긴 자와 그저 적당히 게으르게 하나님을 섬긴 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27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고, 또 요한계시록 22:12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My reward is with me.)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과 영생을 얻고, 구원받은 자로서 신실하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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