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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감사지수(GQ: Gratitude Quotient)


매컬러(Michael E. McCullough)와 에먼스(Robert A. Emmons)는 여섯 가지 질문 항목(GQ-6)을 만들어 감사지수(Gratitude Quotient)를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 여섯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➀나에게는 감사할 일이 매우 많다, ➁만일 감사할 일의 목록을 적는다면 매우 길 것이다, ➂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➃나이가 들면서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이루었던 사람이나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점점 감사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➄주변을 둘러볼 때 감사할 일이 많지 않다, ➅내가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감사하게 되려면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이 여섯 가지 질문에 대해 어떠한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배점이 다르게 되고, 각 문항에 대한 배점을 합산해서 감사지수를 산출하게 됩니다. 당연히 총점이 높을수록 감사지수(GQ: Gratitude Quotient)가 높게 나오고, 감사지수가 높을수록 행복지수(HQ: Happiness Quotient)도 비례적으로 높아집니다. 감사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닙니다. 감사는 일상의 고백입니다. 일상화된 감사가 클수록 행복도 커집니다. 감사의 누적량이 행복을 좌우합니다. 행복지수는 성적순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감사지수와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의식적으로라도 감사지수를 높이도록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이 항상 감사할 일만으로 채워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감사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감사지수를 높이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요? ‘감사’의 사전적 의미는 ‘고맙게 생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 뜻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감사는 상황보다는 마음과 태도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태도는 사실보다 중요하다(Attitude is more important than fact.)”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우리 손에 쥐어진 감사 거리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우리가 매사를 감사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감사지수를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와 행복은 같은 선상에 놓여있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지듯이, 행복해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인생독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탈무드에는 존경받는 랍비 중 한 명인 아키바의 이야가 나옵니다. 어느 날 아키바가 먼 여행을 떠나면서 유대 경전인 토라를 읽기 위한 등불, 시간을 알리는 수탉, 그리고 긴 여정을 위한 나귀와 함께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 날이 저물어 어느 마을에 들어가 잠자리를 청하자 사람들이 모두 거부했습니다. 늘 감사하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께서 더 유익하게 하시려는 것일 거야.” 그는 불평하는 대신 마을 한 모퉁이에 천막을 치고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토라를 읽기 위해 등불을 켰습니다. 그런데 그만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에 나귀와 수탉이 놀라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토라밖에 없었습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을 원망할 법도 한데, 그는 “하나님께서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라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짐을 챙겨 마을로 들어가 보니, 지난밤 도적 떼의 습격으로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등불이 켜져 있었더라면, 그리고 나귀와 수탉이 울부짖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교훈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감사지수를 높이려면 평소에 누리는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게 기적입니다. 우리 몸의 혈관의 길이는 지구 세 바퀴 길이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핏줄 가운데 한 군데만 막히거나 터져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심장은 하루 10만 번 정도 한시도 쉬지 않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혈액을 순환시키며, 신장은 한시도 쉬지 않고 혈액을 여과하여 소변으로 배출시킵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나면 우리 몸을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경이로운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시편 139:14,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그리고 아울러, 나를 위해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내 몸의 오장육부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모든 은혜와 축복의 씨앗입니다. 감사를 심어야 더 풍성한 감사의 열매가 열립니다. 감사는 마치 옹달샘과 같아서 계속 물을 퍼내야만 깨끗한 물이 새로 고입니다. 감사는 또한 젖소의 젖과 같아서 매일 젖을 짜내야만 계속 신선한 젖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묵혀두면 썩고맙니다. 축복은 감사할 때 진정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인용하는 자에 따라 다소 버전이 다르긴 하지만, 영국의 스펄전 목사님은 감사가 감사를 낳는다는 진리를 매우 적절하게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촛불에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필요 없는 불야성(不夜城)의 천국을 주신다.” 요한계시록 21:22-23은 요한 사도가 환상 중에 본 천상의 새 예루살렘성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 (예수님)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감사야말로 천성으로 향하는 길임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라고 했고,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감사는 은혜를 받는 그릇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달을 맞아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으로 늘 은혜 충만한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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