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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이런 친구가 있나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삶의 자원들을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재산을 불려 나가는 재(財)테크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시간도 돈이기에 한정된 시간을 슬기롭게 잘 선용함으로써 절대치 시간을 상대치 시간으로 늘려가는 시(時)테크, 노년의 건강을 위해 젊었을 때 운동을 통해 근실하게 근육을 저축하는 근(筋)테크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 우정을 돈독하게 쌓아둠으로써 특히 노년의 4고(苦) 즉 질병, 빈곤, 고독, 무위(無爲) 중 하나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벗을 사귀는 우(友)테크도 요즘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한국 지정의 아이콘일 뿐 아니라 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수에다가 초대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한 이어령 교수께서 『마지막 수업』이란 저서에서 남긴 말이 우리에게 친구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실패했다. 혼자서 나의 그림자만 보고 달려왔다. 동행자 없이 숨 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왔다. 더러는 동행자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경쟁자였다.”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자산이요 큰 기쁨입니다. 공자님도 우정을 상찬(賞讚)한 바 있습니다.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 즉 “원방에서 친구가 오니 이 어찌 아니 기쁜가!”라는 뜻입니다. 친구는 때로 가족보다 더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못할 말, 가족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까지라도 친구에게는 서슴없이 하기도 합니다. 가수 진시몬이 부른 “보약 같은 친구”가 대중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키며 히트한 것은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자네는 좋은 친구야 /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두 사람...자식보다 자네가 좋고 돈보다 자네가 좋아 / 자네와 난 보약 같은 친구야 / 아,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 같은 친구야”

성경에는 우정에 관한 구절이 의외로 많이 나옵니다. 몇 구절만 인용해보겠습니다. 특히 인생의 지혜를 언급하고 있다고 해서 “지혜 문서”의 대표로 꼽히는 잠언에는 친구에 관한 구절이 많습니다.

(잠언 17: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이 구절은 진정한 친구라면 어려운 시기에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영어 속담에도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또는 필요할 때(in need)”라는 말과 “진정한(indeed)”라는 말의 각운(脚韻)을 맞춘 멋있는 속담입니다. 우정의 진정성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친구를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른 말로 반복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조하는 잠언의 대구법(parallelism) 표현기법을 감안할 때, 이 구절은 친구의 우정어린 사랑은 피를 나눈 혈육에 버금가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잠언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이 구절은 우정에 관해서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친구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모두의 친구는 아무의 친구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명언입니다. 그는 진정한 친구는 덕(virtue)과 인격(character)을 갖춘 친구인데, 이런 친구들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이 문장은 요즘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한 유명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Cardigan’의 가사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격언에서 유래된 미국 속담이 있습니다. “Everybody's friend is nobody's friend.”라는 속담입니다. 사실 친구가 많다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정의 질입니다. 요즘 SNS(미국에서는 Social Media라고 함)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스스로 ‘마당발’이라고 자처하며 큰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다 친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 중에는 서로 ‘connected’되어 있긴 하지만 ‘related’되어 있지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즉 연결은 되어 있으나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알고 지내는, 아니 대부분의 경우 그저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지인에 불과합니다.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이 구절은 좋은 친구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울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항상 좋은 말만 해주는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자기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따끔하게 채찍을 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언 27:5에도 이와 같은 취지의 교훈이 있습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작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이 말씀은 배반자 가룟 유다를 상기시켜줍니다. 누가복음 22장 48절에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당국자들과 미리 군호를 맞추고 예수님께 다가가 존경하듯 “선생님” 하면서 입맞춤을 하는 그의 가증스러운 모습은 우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우정에서 빠질 수 없는 덕목이 신뢰일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는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함석헌 님이 지은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이것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우리의 친구라고 말씀하셨고, 구약성경에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하나님의 벗”이라고 한 구절들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요한복음 15:13-1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성경에서 가장 진한 우정은 아마도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일 것입니다. 둘은 시쳇말로 정말 ‘찐친’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왕위를 놓고 장차 자신의 정적이 될 수도 있는 다윗이 자기 아버지 사울 왕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당하자 다윗을 마치 자기 목숨처럼 사랑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인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개인의 이해득실을 초월해 진정한 우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나단의 사랑은 저 멀리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의 예표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숭고한 사랑이었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사랑을 베풀어 줄 친구가 있나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너무나 감동적이라서 1962년 뉴욕의 광고회사 대표 마틴 스펙터(Martin K. Specter)가 고안한 새로운 개념의 부호인 “‽, 물음느낌표(interrobang)”를 제목에다 한번 붙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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