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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유머러스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저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게 되면서 몇몇 교수님들과 함께 신학교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다 목사이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없이 서로 돌아가며 예배 인도, 기도, 설교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한번 언어유희(pun, wordplay)를 해보겠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내 안에 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닮다’와 ‘담다’가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한 언어유희인데,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긴 언어유희라고 생각되어 제 기억에도 담아두었습니다.

제가 언젠가 “유머리스트(humorist)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일부분을 듬성듬성 자기표절(self-plagiarism)해 보겠습니다.

“얼핏 예수님과 유머는 마치 갓 쓰고 양복을 입은 것처럼 뭔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느낌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세 번 우신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웃으셨다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늘 근엄하시고 진지하시며 심각하신 분, 유머 같은 것은 아예 입에 올리시지도 않는 소위 ‘노잼’으로 재단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물론 저질스러운 농담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유머러스한 분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 교수이며 신학자인 츄르블러드(David Elton Trueblood)는 『The Humor of Christ(그리스도의 유머)』라는 책에서, 예수님은 논쟁과 비유와 대화를 통해 여러 상황에서 유머와 해학과 위트와 역설(paradox)을 적절하게 사용하셨음을 공관복음서를 통해 제시하면서 예수님은 가히 ‘유머리스트’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츄르블러드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가 성경 말씀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만 생각이 고착돼 있기 때문에 기쁨과 웃음의 종교인 기독교를 슬픔과 우울함의 종교로 만들어버렸다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랄프 코작(Ralph Kozak)이 그린 ‘웃으시는 예수님’(Laughing Jesus)의 모습은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파안대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왠지 마음의 평안과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프린스톤 신학교의 교수였던 브루스 메츠커(Bruce M. Metzer) 박사는 『신약성서개설』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다양한 표현법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 내용 중에 예수님의 언어유희(pun)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外飾)을 정죄하시면서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여기서 하루살이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칼마(qulma)이고 낙타에 해당하는 아람어는 감라(gamla)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일상 언어였던 아람어를 사용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회화적(繪畵的)인 어법은 예수님의 언어유희에 신랄함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관련해 재미있는 유머들이 많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자기 아들이 학교 기숙사에 있는데 장이 안 좋아 자주 설사를 하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게 하고 약을 조제해서 챙겨주고 집에 와서 전화하기를 "아들아, 약을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고 당부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목사인데 약만 먹으라고 한 것이 왠지 맘에 켕겨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아들의 병이 치료가 되도록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아들의 설사 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하는데 1주일 후에 아들이 전화가 와서 하는 말에 한바탕 웃었답니다. "아빠, 나 설사 다 낳았어. 이제 그만 기도해. 아빠가 더 기도하면 나 변비 걸릴 것 같아."

하루는 순례자가 산길을 가다가 우연히 호랑이를 만나자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그런데 호랑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호랑이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호랑이가 순례자를 냠냠 맛있게 잡수셨답니다. 왜 하나님은 호랑이의 기도를 들어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청원기도’보다 ‘감사기도’를 더 기뻐하시기 때문이죠.

“갓(冠, God)을 쓰는 조선인”이라는 유머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유머입니다. 누가 지어냈는지 읽을 때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말 기발한 유머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선교 초기에 조선에 온 미국인 선교사가 보니 양반들이 모두 갓을 쓰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하도 신기해서 "그 머리에 쓴 게 뭐요?"라고 물었더니 ‘갓‘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갓(God)이면 하나님인데, 조선 사람들은 항상 머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다닌단 말 아닌가?” "그러면, 나라 이름은요?" "朝鮮이요. 아침 朝에 깨끗할 鮮이요. '朝'는 먼저 十을 쓰고 그 밑에 낮을 의미하는 日을 쓰고, 또 十을 쓰고 그 옆에 밤이라는 뜻의 달 月을 쓰지요.” 선교사는 놀라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낮(日)에도 십자가(十), 밤(月)에도 십자가(十), 온종일 십자가와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구나." 이어서 "鮮(선) 자도 풀이해 주시오." “물고기 魚 옆에 양 羊 자를 씁니다." 선교사가 다시 놀라며 말했습니다. "물고기는 초대 교회의 상징인 '익투스'(ἰχθύς)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신앙고백이고, 또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니 鮮 자는 완전히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글자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선 사람’을 영어로 ‘Chosen People’(선민)이라고 한다고 하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합니다.

엄숙함과 근엄함이 반드시 경건함과 나란히 가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기쁨과 웃음의 ‘잔칫집 기독교’를 울음과 우울함의 ‘초상집 기독교’로 만들지 않도록 하나님이 주신 웃음과 여유와 기쁨을 맘껏 즐길 줄 아는 명랑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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