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는 간단하게 “여호와 로이”(Jehovah Roi)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약 60회에 걸쳐 하나님은 이 이름으로 등장하십니다. 성경은 특별히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편 100:3)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시’로 일컬어지는 시편 23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서 시편 중에서도 압권이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저와 잠시 신학교에서 함께 수학했던 윤 사무엘 목사님이 담임하는 교회 이름이 ‘로이교회’입니다. 교회 이름으로 흔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왠지 가슴 깊이 와 닿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성가도 많이 있습니다.
(시편 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시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진한 공감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은 목동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어린 양을 건져내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군대의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울 때 자신이 이전에 목동으로서 했던 행위를 회상하면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어려움 중에서 건져주시라는 믿음을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사무엘상 17: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이러한 그의 목동으로서의 경험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자 되심을 그 누구보다도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시는 그의 경험이 알알이 녹아있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여호와가 힘 있는 목자시라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양입니다. 양은 뿔도 없고 날카로운 발톱도 없으니 사나운 짐승의 공격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입니다. 자구책이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게다가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양은 겨우 10m 앞도 보지 못하는 고도 근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스스로는 목초지도 잘 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다큐멘터리를 보면, 목동이 양 떼를 목초지로 이동시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또 양은 겁이 많습니다. 곁에서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자가 있을 때 몹시 불안해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고백은 다윗의 험난한 생애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는 장인 사울 왕의 시샘을 사서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새와 같은 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전전하며 방황의 세월을 보낸 적도 있으며, 심지어 쥐 잡듯이 전국을 샅샅이 뒤지는 사울 왕의 군사들의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벗어 도피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당신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그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심으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감격에 겨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7가지 “나는...이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Seven ‘I am’ Statements”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과 진리와 생명,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I am’은 희랍 원어로 ‘ἐγώ εἰμι(ego eimi)’인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실 때 말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서 히브리어로 ‘야웨(Yahweh)’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지칭하심으로써 자기의 신적인 정체성을 은연중에 선포하신 셈입니다.
(요한복음 10:11-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목자라고 다 선한 목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삯꾼 목자도 있습니다. 삯꾼 목자는 양이 이리를 만나 위험에 처해도 양을 지킬 생각은커녕 나 몰라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칩니다. 왜냐하면, 자기 양이 아니므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인 우리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말씀은 사사시대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씀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태복음 9:36)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생각나게 합니다. “제 길로 갔다”는 영어로 “have gone astray”인데, “길을 잃고 방황했다”는 뜻입니다.
저희 집 벽에는 숲속에서 마치 갈 곳을 잃은 듯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양들을 그린 유화 액자가 한 점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을 선물해 주신 분이 설명하기를, 바로 이사야 53:6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영감을 얻어 그린 그림이라고 했습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은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참 목자, ‘여호와 로이’를 만날 때 비로소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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