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을 내리고 폐를 보호하는 배(Pear)

고려 말 이조년 선생의 〈이화에 월백하고〉라는 배꽃에 관한 한국 고시조가 있다. 이 시구처럼 배는 청초하고 고고한 아름다움을 가진 과일로 우리에게 서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제사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과일 중에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능금과에 속하는 배는 원산지가 중국이며 그 재배 역사가 오래되고 종류도 20여 종이나 된다. 크게 분류하자면 서양배와 동양배로 나뉘며 동양배는 다시 중국배, 한국배, 일본배로 구분된다. 동양배는 수확하는 즉시 식용할 수 있으나 서양배와 일부 중국배는 수확 후 일주일 정도 추숙(追熟)시켜야만 그 향미가 더욱 좋아져 껍질째 섭취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표주박 모양과 비슷한 서양배는 당분 함량이 많아 맛이 진하며 과육 속에 오톨도톨한 석세포가 적다. 하지만 수분과 비타민의 함유량은 적은 편이다. 그래서 생식보다는 잼이나 시럽, 통조림 등으로 가공해 식용된다.
일본배는 수분 함유량이 많고 담백하며 과육 속에 석세포가 많으며 모양이 바르다. 한국배와 중국배는 그 중간형으로 포도당, 과당, 설탕 등의 감미성분을 함유하고 있으나 사과와는 달리 사과산, 구연산, 주석산 등의 유기산을 적게 함유하고 있어 신맛이 거의 없다. 대신 효소가 많아 소화를 돕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고기를 먹고 난 뒤 후식으로 배를 내어놓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한 불고기를 잴 때 배를 섞는 것도 효소에 의해 고기가 연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화불량이 잦거나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이 배를 과잉 섭취하면 설사를 일으키기 쉽다.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배를 갈아서 주스로 만들어 섭취시키는 것이 좋다.
독특한 달콤함과 시원한 맛을 가진 배는 비타민과 미네랄은 아주 적지만 포타시움(K) 함량이 높은 편이어서 체내의 생리대사에 좋은 알칼리성 과일이다. 단백질 함량은 다른 과일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변비 및 정장작용이 탁월하다. 또한 배에는 퀘르세틴이나 루테올린과 같은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항암, 항산화기능, 기침, 천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배는 민간요법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우선 담이 나오는 기침에 배즙을 내어 생강즙과 꿀을 함께 타서 섭취하면 효력이 있다. 또한 심한 기침을 할 때 배 한 개를 썰어 우유를 섞어 섭취하면 기침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예로부터 ‘배는 이에 독이 된다’는 말도 전해져 내려온다. 이는 아마도 배를 먹을 때 치아 사이사이에 석세포가 끼어 충치의 원인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
민간에서는 소갈증이 있는 사람에게 배즙에 설탕을 넣고 끓인 다음 차게 보관하다가 물에 한 숟가락 정도씩 타서 먹이곤 했다. 평소 목이 아픈 사람도 배를 갈아 즙을 자주 마시면 도움이 된다.
• 상식
- 보관법 : 비닐랩으로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습도 조절을 위해 신문지로 배를 싸서 밀봉이 가능한 봉지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 그러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배 맛을 즐길 수 있다.
- 배를 활용한 음식 : 배 장아찌, 배 식초절임, 배 꿀찜, 배말랭이 김치 등이 있다. 이 중 배 꿀찜은 목을 보호하고 목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탁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