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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화목한 인간관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자 하나 만들 때도 의미를 담아서 만들었던 중국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를 담아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했고, 영어로도 ‘together being’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며, 독일어로도 ‘Mitmensch’(mit는‘함께’, Mensch는 ‘인간’을 의미함)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자연히 인간관계라는 것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서 진행되게 마련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 자체가 관계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부모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형제자매의 관계, 부부 관계, 친척 관계, 친구 관계, 이웃 관계, 직장동료 관계, 사업파트너 관계 등등 점차 관계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목회자와 성도들 간의 관계, 그리고 교인들과의 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도 존재합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복잡다기하게 얽히고설킨 인관관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것이 곧 성공과 행복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성공하기를 원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인간관계로 인해 우리의 삶이 뒤틀려지고, 그래서 인생에서 실패와 불행과 고통의 쓴 맛을 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는 신학교 때 어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늘 새록새록 생각나곤 합니다.
“목회는 80%가 인간관계이다.”
얼핏 신학교 교수님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목회를 하다보면 그 말씀이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오랜 세월 숱한 경험을 통해 채득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설교, 성경공부 인도, 심방, 상담, 행정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는 종합 기능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역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다방면에 유능한 목회자라 할지라도 인간관계에서 실패하면 사역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성도들 중에 교역자를 힘들게 하는 분들을 보면 꼭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믿음이 돈독한 자들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원활하지 못한 인간관계에 기인합니다. 인간관계가 틀어지면 믿음이 질식해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든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 목회관 내지는 목회중점을 세 가지로 요약해놓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즉 말씀목회, 인화목회, 균형목회를 추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말씀목회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마땅히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균형목회란 어느 한 분야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여러 분야를 골고루 균형 있게 추구해보자는 의도해서 정해본 목회철학이었습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일미요리보다는 버페(buffet) 식단을 지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화목회는 글자 그대로 인화(人和)를 목표로 삼자는 취지였습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성도들 간에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가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회 일선에서 물러나 생각해보면 목표를 의도한 만큼 원활하게 이루지 못했다는 회한이 남아 늘 아쉽습니다.


사실 인간관계를 잘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선량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량하고 고집스러운 사람,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사람, 나를 해코지하려는 사람, 무엇보다도 나를 핍박하며 못살게 구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지키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타고 날 때부터 비교적 원만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노력에 노력을 반복해야 합니다. 특히 스스로 자신의 성격이 까칠하고 모가 났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그래서 항상 좌충우돌 이 사람과 부딪치고 저 사람과 부딪치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들은 더 강도 높게 자신을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편하고 남도 편한 법입니다.

인간관계란 한번 깨어지면 회복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합니다. 마치 교통사고와 같아서 사고는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일어나지만 사고를 수습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는 마치 운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보곤 합니다. 운전을 할 때는 좌우전후를 두루두루 살펴보아야 합니다. 똑바로 앞만 보고 간다고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운전이 미숙해 보이는 자가 있으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운전연습생이라는 Student Driver라는 사인이 붙어 있으면 레인을 바꾸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난폭운전을 하는 자가 있으면 예방운전을 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운전면허시험을 볼 때 이러한 것을 가리켜 ‘거리두기’(detachment)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아예 불필요한 갈등이나 충돌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서 매번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내공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교훈 삼아 부단히 영적인 훈련을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2-3)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요약하자면, 한 마음을 품고, 겸손하게 처신하면서, 남을 존중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날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몇 십 년을 동고동락한 부부 간에도 한 마음이 되지 않아 갈등할 때가 있습니다. 심장이라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막역한 친구지간에도 한 마음이 되지 않아 티격태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님의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믿음의 형제자매 간에도 역시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는 것입니다. 앞에 인용한 말씀에서 “뜻을 합하라“ 했는데, 여기서 뜻은 목적(purpose)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목적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서 피값 주고 사신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목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방법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생각과 방법을 잘 조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조화시킨다는 말은 포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서로 양보도 하고 적절히 조정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피차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통일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자숙어 중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화합은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꼭 같아서는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서로 화합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항상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설령 서로 생각이 좀 다르더라도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내세우지 말고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계의 하모니가 이루어집니다. 끝까지 자기 주장만 옳다고 밀어붙이면 대립각이 생기고 급기야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모나면 정을 들이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파열음, 마찰음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냇가의 수석처럼 이리 깎이고 저리 깎이고 해서 둥글둥글한 돌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SNS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만남은 운명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번쯤 곱씹어봄직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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