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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성경 길라잡이

성경 길라잡이
- Revelation, Inspiration, Illumination, Application, Translation -

크리스천의 신앙의 근거는 바로 성경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은 어떠한 책이며,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깨달을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성경 말씀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Revelation)
성경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계시라고 하면 뭔가 가려진 것, 은밀한 것, 비밀스러운 것,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라는 말은 원래 이러한 것과는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계시는 헬라어로 ‘아포갈립시스’입니다. 이 단어는 ‘아포’라는 말과 ‘칼립시스’라는 말이 합해진 단어인데, ‘칼립시스’라는 말은 ‘비밀스러운 것, 숨겨진 것’이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veil 또는 cover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포’는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접속사입니다. 그러므로 ‘아포칼립시스’라는 말은 unveil, uncover라는 뜻입니다. 즉 숨겨진 것을 뚜껑을 열고 밝히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물론 계시의 내용은 신비하고 오묘할 수 있지만, 계시라는 말 그 자체는 사실상 이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셔야만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베일을 벗기시고 뚜껑을 열어 보여주셔야만 우리가 알 수 있지 인간 스스로의 탐구와 사색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첩첩 산중에 들어가 오랫동안 명상을 한다고 깨달아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봉인해두셨기 때문에 아무도 알 수 없는데도 조급한 생각으로 재림의 때를 계산하다 보니 시한부 종말론 같은 잘못된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철두철미 계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구원의 도리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가장 확실한 근거는 바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데 있습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Inspiration)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말입니다. 얼핏 잘못된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성경을 기록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자는 인간입니다. 40여 명의 인간이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냐고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디모데후서 3:16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은 원어대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으셨다’(theopneustos) [God-breathed]라는 뜻입니다. 많은 성경들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God-inspire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여기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의어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을 근거로 해서 주장된 학설이 성서영감설입니다. 그런데 성서영감설에도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유기적 영감설’(완전영감설)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사용하는 용어나 표현까지도 하나님의 의도에 맞도록 일일이 세심하게 간섭하셨다는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비록 인간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성경의 다양성과 통일성(unity in diversity)입니다. 성경은 1,600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을 가진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배후에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구약과 신약도 마치 소설의 전후편처럼 예언과 성취라는 도식으로 동일한 주제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도 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조명이 있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Illumination)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지식으로는 성경을 깨달을 수 없으며, 성경의 내용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2:13-14)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깨닫는 것도, 또 깨달은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성령님의 조명에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말씀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이단과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 교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다 자기 나름대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벧드로후서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우리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위험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역자들의 지도를 받거나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성경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Application)
단순히 성경을 깨닫고 성경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것은 마치 부뚜막의 소금을 집어넣지 않은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맙니다. 아무리 성경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을 내 삶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말씀을 살아내야’(live out the Word of God)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무엇을 믿고 행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잘못할 때는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23에 보면, 성경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우리 자신을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우리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해 줍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길을 가도록 훈련시키고 선한 일을 하도록 영적으로 무장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잔뜩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칼로리가 과잉이 되어 당뇨병과 같은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의 양식을 잔뜩 섭취하고 운동 즉 실천이 부족하면 ‘영적 당뇨병’에 걸리게 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앎과 삶이 함께 나란히 갈 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5. 성경은 번역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습니다. (Translation)
성경은 원래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번역이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중세 가톨릭 시대만 해도 라틴어로 된 성경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제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다양한 언어로 성경이 번역됨으로써, 특히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발명됨으로써 성경이 급속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번역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언어가 없는 종족들에게는 언어를 만들어가며 번역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없지 않습니다. 일례로, 눈이 전혀 오지 않아 눈이라곤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아프리카인들에게 “네 죄가 눈과 같이 희게 되리라”는 말씀은 설령 문자대로 번역을 한다고 해도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소위 ‘역동적 등가성’(dynamic equivalence)이라는 이론을 동원해서 그 문화권에서 이해될 수 있는 단어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할 때도 원래의 의미에 가장 근접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개정 작업을 여러 차례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쨌든 지난한 작업인 번역을 통해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성경을 더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