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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소박한 교회론  - 교회가 띄워야 할 네 척의 배(ship) -



교회를 바르게 섬기려면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교회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교회생활을 통하여 만족과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신학서적에 적혀있는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교회론 대신 그 동안 목회하면서 나름대로 느꼈던 ‘소박한 교회론’을 피력해보려고 합니다. 이 ‘소박한 교회론’을 ‘교회가 띄워야 할 네 척의 배(ship)’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어느 해군 제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해군에게 가장 중요한 배(ship)는 Leadership이다.” 그의 말에 힌트를 얻어 저도 영어에서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인 ‘-ship’이 들어가는 네 개의 영어 단어로 교회가 띄워야 네 척의 배를 생각해보았습니다.

1. ’내 교회’ 의식(Ownership)

현재 자기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대하여 Ownership 즉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매사를 주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마련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은 섬김의 자세부터가 다릅니다. 간혹 식당 간판을 보면, 작은 글자로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Family run restaurant)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이 갑니다. 이 식당은 주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이기 때문에 음식맛과 서비스가 다르다는,  이른바 ‘차별화’를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텃새를 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좋은 의미의 터줏대감 의식은 가져야 합니다. 텃새의식은 요즘식으로 말하면 소위 ‘갑질’에 해당하지만, 터줏대감 의식은 사실상 ‘을의 자세’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군림하기보다는 섬김의 자세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저 철새교인, 손님교인, 뜨내기 교인, 구경꾼 교인으로 다녀서는 보람도 만족도 없고 신앙상의 진보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몸과 지체의 관계로 비유하고 있는데, 주인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개개인이 한 몸에 붙어있는 중요한 지체임을 자각하고 지체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손과 발, 눈과 귀, 코와 입, 모든 지체들이 각기 고유한 사명이 있으면서 동시에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듯이,성도 개개인도 먼저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고유한 사명을 온전하게 감당할 때 주님의 몸 된 교회 전체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각 지체들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포용적인 관계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2. ‘우리 교회’ 의식(Partnership)

교회는 구성원인 성도들 간의 삶이 상호의존관계에 있는 유기적인 신앙공동체입니다. 공동체(community)와 단체(group)는 다릅니다. 단체는 단순히 사람들의 집합체이지만 공동체는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지향점을 목표로 삼아 모든 것을 공유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세워나가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영적인 집단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자체가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교회를 ‘회중’(카할, congregation)이라고 했고, 신약시대에는 ‘에클레시아’ (불러냄을 받은 자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두 기관은 가정과 교회인데,이 두 기관이 가장 강한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믿음의 동기간들입니다.

(에베소서 2:19-20)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3. ‘동료’의식(Fellowship)

교회의 5가지 사명은 예배, 선교, 교육, 봉사, 친교입니다. 그런데 친교는 자칫 소홀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중시하는 우를 범하기 쉬운 영역입니다. 많은 분들이 친교를 단순히 성도들끼리 어울려 희희낙락하는 것쯤으로 여겨 소홀이 여기거나 심지어 죄악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혹 어떤 교회들은 친교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른 사명들이 은연중 뒤로 밀리는 잘못을 범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모든 측면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와 이웃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가 반듯하게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듯이 친교도 종적인 관계와 횡적인 관계가 균형을 이룰 때 건전한 친교가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어떤 분이 Fellowship이라는 단어를 Fellow(동료)와 Ship(배)로 나누어서, 이것은 어쩌면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의미라고 아주 재치있게 설명한 글을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성도들은 같은 배를 타고 가는 동고동락의 공동운명체이며,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들’ 즉 주님의 피로 엮여진 혈맹이요, 평생동지를 넘어 영생동지인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6-27)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4. ‘주님의 교회’ 의식(Lordship)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의 핏값을 지불하고 교회를 사셨습니다. 피는 생명이요, 그러므로 핏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올인하셨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핏값으로 교회를 사시고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에베소서 1:22-23) “만물을 그(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그 누구도 교회를 사유화해서는 안 됩니다. 담임목사 세습도 마땅히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님만이 통제권을 갖고 계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 대신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할 때 교회는 이미 교회의 본분을 떠난 것이며,그러한 교회는 사실상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