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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동성애에 관하여(3) - 목회적 관점

이제 교회 안에도 동성애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교회 내에서의 그들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더욱이 교단마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달라지면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그들의 위치에 대한 논의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입장이 다양해서 어느 입장을 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비록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개인이나 교회에게도 여전히 풀기 어려운 난감한 과제로 남아있다. 다시 말해서, 목회적 관점에서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스탠리 그렌츠는 『환영과 거절 사이에서』(Welcoming but Not Confirming: An Evangelical Response to Homosexuality)라는 그의 저서에서 여러 다양한 입장을 대체로 다음 네 가지 범주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무제한 개방’(unqualified openness)이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동등하게 여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이 직분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교회 생활에 이성애자들과 꼭 같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동성 결혼도 축복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 ‘제한된 허용’(qualified acceptance)이다. 동성애자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직분을 부여하는 것과 동성결혼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셋째, ‘차별적 허용’(differentiated acceptance)이다. 악하다고 여기는 동성애 행위와 악하지 않다고 여기는 동성애 선호(지향)를 구분하는 입장이다. 존 스토트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관심은 동성애 행위(이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에 있지 동성애 경향이나 성향(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에 있지 않다는 점을 처음부터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존 스토트는 우발적 동성애와 헌신된 동성애를 구분할 필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동성애 행위를 교회의 여러 가지 죄 중의 하나로 다루어야 하며, 따라서 직분뿐만 아니라 교회 회원권도 금욕하는 동성애자에게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넷째, ‘무차별 거부’이다. 성적 지향과 성적 행위를 구분할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동성애자에게는 무조건 회원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그렌츠는 개인적으로 두 번째 입장과 세 번째 입장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책에서 동성애에 대한 복음주의의 응답에 대하여 다루면서 그의 입장을 한 마디로 ‘Welcoming but Not Affirming’(환영하지만 긍정하지는 않는다)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동성애자 용납하기’와 ‘동성애 허용하기’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과 동성애자의 교회 활동 허용이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동성애자라 할지라도 동성애가 죄임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동성애 지향과 싸우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절제하는 한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목회적 배려가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존 스토트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용납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해주신다는 뜻이지 우리가 계속 죄를 짓는 것을 눈감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되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훈계하신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동성애자 커플이 함께 나란히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행위를 받아드려야 할까 금해야 할까. 금해야 하는 것이 맞는 답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동성애 지향을 넘어 일종의 동성애 행위에 해당하며, 본인들이 그것을 회개하거나 고칠 의사나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1:27-30에 의하면, 성만찬은 죄를 회개한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예식인데, 동성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는 행위가 되며, 그 결과로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잔다’라는 말은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행위는 매우 심각한 죄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렌츠는 모든 동성 관계를 용납하지 말아야 하고 직분도 허용해서는 안 되며, 게이와 레즈비언의 결혼도 용인될 수 없다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아야 할 자들이기 때문에 온전한 회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입장도 견지하고 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입장에 서서 그들도 목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진보적 보수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성애의 원인이 후천적(nurture)인 것이 아니라 비록 선천적(nature)이라 할지라도, 또는 다중적이라 할지라도 동성애가 죄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보스웰(John Boswell)은 상업적, 착취적, 매음적 동성애만 정죄하지만, 성경은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목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자도 목양의 대상인 것 또한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소수자인 LGBT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해주는 것이 사랑과 정의의 원리에 부합된다고 본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 소위 ‘정치적 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관점에서 성소수자들에게 합당하지 않은 혜택을 부여하려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존 스토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동성애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경에서 동성애 관행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인간의 성욕과 이성애적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에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동성애에 대한 크리스천의 종합적인 입장을 기독교의 3대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의 관점에서 정리해주고 있는데, 크리스천의 입장을 정리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믿음’의 견지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소망’의 관점에서, 비록 동성애자 중에 ‘치유’ 또는 ‘치료’라는 말을 거부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자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변하는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엘리자벳 모벌리(Elizabeth Moberly)의 ‘학습이론’(learning theory)이 이러한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사랑’의 견지에서, 동성애자도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기본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동성애 혐오증’에서 탈피해 기독교적인 사랑과 이해와 용납과 후원의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일은 동성애가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 풍토가 속히 바뀔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동성애가 사회에 만연해진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동성애자의 흑사병’으로 일컬어지는 AIDS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자녀 생산과 양육 면에서 가정 해체 내지는 가정 파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음은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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