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성경의 권위
매년 12월 둘째 주일은 온 세계 교회들이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성경을 더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교회의 중요한 절기 중 하나입니다. 오는 주일 성서주일을 앞두고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때 성경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기록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신뢰한다는 것, 즉 인언(人言)을 신언(神言)으로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권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신앙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신앙과 삶의 유일무이한 법칙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종교적 경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로 기록된 책이며, 그러므로 모든 신자의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책의 종교’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씀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NIV: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달리 말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KJV: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성경의 저자들이 어떤 오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배후에서 간섭하셨다는 것이 바로 성서영감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의 인격과 지식과 배경 등 모든 것을 전인적으로 사용하시되 그 기록 내용에 있어서는 오류가 없도록 친히 간섭하셨다는 주장을 ‘유기적 영감설’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성경의 원본은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복사본의 복사본들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신약성경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5,600개가 넘는 그리스어 성경 사본, 1만 개가 넘는 라틴어 사본이 있으며, 이 외에도 500개 이상의 다른 언어 성경사본이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혹 어떤 내용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있어서 성경 자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다소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가 침해받지 않는 근거는 성경의 권위는 그 문자의 정확성에 있지 않고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의 경륜과 그 계시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자체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자증(自證) 능력으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이끌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사생관(死生觀)을 완전히 바꾸어놓음으로써 놀라운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반드시 성경을 이 세상에서 말살하고 말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이 성서공회의 건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에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반박하려고 해도 성경은 그 힘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운동력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에네르기아’(energia)입니다. 여기서 에너지(energy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에너지가 있으면 반드시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화(聖火)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입증하는 많은 증거를 변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경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장장 1,600년에 걸쳐 40명 이상의 다양한 저자들이 다양한 장르로 기록했지만, 그러한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다양성 속의 통일성’(unity in diversity)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구원을 주제로 한 대하드라마의 대본을 쓰시고 연출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성취도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인간도 예언을 할 수 있고, 또 때로 용케도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자가 많은 예언을 운문의 형식으로 쏟아냈는데 그 가운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으로 애매하게 말해놓은 것을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억지춘향이격으로 꿰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격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100% 적중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빗나가면 하나님의 예언은 부도가 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의 27%가 예언입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에 관한 예언만 해도 300가지가 넘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놀랍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언젠가 무디 성경연구원(Moody Bible Institute)에서 이런 계산을 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 중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異見)이 있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학자들이 다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예언, 그 중에서도 여덟 가지 핵심 예언들만 골라서 이 예언들이 우연히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질 확률을 계산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면적의 7배가 되는 텍사스주 전체에 2피트 높이로 10센트짜리 동전을 쌓으면 100조 개가 된다고 합니다. 100조는 0이 무려 14개인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이렇게 100조 개의 동전을 쌓아놓고 그 중에 동전 하나에다가 표시를 한 다음 무작위로 동전 하나를 골랐을 때 그 동전이 표시를 한 바로 그 동전과 맞아떨어질 확률이 8개의 예언이 우연히 한 사람에게 동시에 성취될 확률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무려 300여 가지가 되는데, 이 모든 예언들이 한 분 예수님에게 모두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났을 때 구약성경에서 당신 자신과 관련된 모든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44)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이 외에도 성서고고학의 발달과 함께 성서지역의 발굴이 진전될수록 성경의 사실성과 역사성이 점차 확증되고 있다는 것도 성경의 권위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여리고성의 발굴은 여호수아서의 사건이 하나의 가공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확신할 때 우리의 믿음의 내용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나아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의 권위를 믿는 확실한 믿음의 토대 위에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의 권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신앙이 성경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신앙과 삶의 유일무이한 법칙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지옥형벌을 면할 수 없다는 사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종교적 경전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로 기록된 책이며, 그러므로 모든 신자의 신앙과 삶의 최종 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책의 종교’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씀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입니다(NIV: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달리 말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KJV: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성경의 저자들이 어떤 오류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배후에서 간섭하셨다는 것이 바로 성서영감설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의 인격과 지식과 배경 등 모든 것을 전인적으로 사용하시되 그 기록 내용에 있어서는 오류가 없도록 친히 간섭하셨다는 주장을 ‘유기적 영감설’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성경의 원본은 불행하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복사본의 복사본들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신약성경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5,600개가 넘는 그리스어 성경 사본, 1만 개가 넘는 라틴어 사본이 있으며, 이 외에도 500개 이상의 다른 언어 성경사본이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혹 어떤 내용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있어서 성경 자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다소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권위가 침해받지 않는 근거는 성경의 권위는 그 문자의 정확성에 있지 않고 성경이 증언하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의 경륜과 그 계시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 자체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자증(自證) 능력으로 인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로 이끌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사생관(死生觀)을 완전히 바꾸어놓음으로써 놀라운 삶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반드시 성경을 이 세상에서 말살하고 말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집이 성서공회의 건물로 사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에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반박하려고 해도 성경은 그 힘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기서 운동력으로 번역된 헬라 원어는 ‘에네르기아’(energia)입니다. 여기서 에너지(energy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에너지가 있으면 반드시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성화(聖火)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권위를 입증하는 많은 증거를 변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경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장장 1,600년에 걸쳐 40명 이상의 다양한 저자들이 다양한 장르로 기록했지만, 그러한 엄청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컨대 ‘다양성 속의 통일성’(unity in diversity)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구원을 주제로 한 대하드라마의 대본을 쓰시고 연출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성취도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인간도 예언을 할 수 있고, 또 때로 용케도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예언자가 많은 예언을 운문의 형식으로 쏟아냈는데 그 가운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적인 표현으로 애매하게 말해놓은 것을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억지춘향이격으로 꿰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황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격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100% 적중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빗나가면 하나님의 예언은 부도가 났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의 27%가 예언입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에 관한 예언만 해도 300가지가 넘습니다.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놀랍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언젠가 무디 성경연구원(Moody Bible Institute)에서 이런 계산을 해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 중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異見)이 있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모든 학자들이 다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예언, 그 중에서도 여덟 가지 핵심 예언들만 골라서 이 예언들이 우연히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루어질 확률을 계산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면적의 7배가 되는 텍사스주 전체에 2피트 높이로 10센트짜리 동전을 쌓으면 100조 개가 된다고 합니다. 100조는 0이 무려 14개인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이렇게 100조 개의 동전을 쌓아놓고 그 중에 동전 하나에다가 표시를 한 다음 무작위로 동전 하나를 골랐을 때 그 동전이 표시를 한 바로 그 동전과 맞아떨어질 확률이 8개의 예언이 우연히 한 사람에게 동시에 성취될 확률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관한 예언이 무려 300여 가지가 되는데, 이 모든 예언들이 한 분 예수님에게 모두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났을 때 구약성경에서 당신 자신과 관련된 모든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44)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이 외에도 성서고고학의 발달과 함께 성서지역의 발굴이 진전될수록 성경의 사실성과 역사성이 점차 확증되고 있다는 것도 성경의 권위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일례로, 여리고성의 발굴은 여호수아서의 사건이 하나의 가공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확신할 때 우리의 믿음의 내용들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고, 나아가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의 권위를 믿는 확실한 믿음의 토대 위에 성경의 교훈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Number | Title | Date |
88 |
기독교인과 삼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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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
87 |
기독교인과 삼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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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 |
86 |
지성에서 영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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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6 |
85 |
지성에서 영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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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6 |
84 |
인간은 계획하고 하나님은 이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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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
83 |
인간은 계획하고 하나님은 이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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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
82 |
‘터치다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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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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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1 |
80 |
‘더함’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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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
79 |
‘더함’ 신앙
|
2019.01.26 |
78 |
상생(相生)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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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9 |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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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19 |
76 |
협동과 협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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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
75 |
협동과 협력의 힘
|
2019.01.11 |
74 |
시간의 청지기
|
2019.01.04 |
73 |
시간의 청지기
|
2019.01.04 |
72 |
인생의 결산
|
2018.12.26 |
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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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6 |
70 |
성육신의 의미
|
2018.12.21 |
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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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
68 |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읍시다
|
2018.12.15 |
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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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
66 |
성경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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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5 |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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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
그리스도인의 긍정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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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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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추수감사절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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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2 |
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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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2 |
60 |
혀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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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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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