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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파종과 수확의 6하원칙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수확은 파종을 함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파종과 수확 즉 심고 거두는 법칙을 신문기사 작성의 기본원칙인 6하원칙(5W1H)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 Who(누가 심어야 하는가)
누가 씨를 심어야 합니까? 농부가 씨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인생 농부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매순간 씨를 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지 않는 자들이 심지 않는 씨까지 심으며 살아갑니다. 아무런 씨앗도 심지 않고 그저 안일하게만 살려고 하는 자는 인생에 대하여 직무유기를 하는 자입니다. 마치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파종과 수확의 법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일단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 않은 데서는 절대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겠다는 사람들은 불한당(不汗黨)입니다. 글자 그대로 땀 흘리지 않고 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2. What(무엇을 심어야 하는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주님께서도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라고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파씨와 부추씨는 꼭 같이 색깔이 검고 모양이 비슷해서 분간이 잘 안 되지만 나중에 싹이 나서 자라는 것을 보면 완연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됩니다. 혹 사람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그러한 속임수가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법칙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연법칙은 간혹 예외도 있습니다. 가령 한 해 동안 열심히 심고 가꾸었지만 추수철에 장마나 태풍으로 인해 노력한 만큼 거두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하나의 예외도 없는 철칙(iron rule)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영적인 법칙은 한 치의 어김도 없는 철칙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은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혀지는 이 세상적인 것, 육신적인 것들만 추구할 게 아니라 영원토록 지속되는, 참으로 가치 있는 것들을 위해 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안일과 연락만 추구하는 삶은 죽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지만,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을 얻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선물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When(언제 씨를 심어야 하는가)
간단하게 말한다면, 씨를 심을 수 있을 때 심어야 합니다. 물론 자연계에서는 파종하는 시기가 따로 있습니다. 솔로몬은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서양 속담에 “쇠는 뜨거울 때 벼르라.”고 했고, “건초는 햇볕이 있을 때 말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비단 청년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느 연령대에 있든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직 건강하고 나의 심장이 뛰고 있을 때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살라는 교훈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시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심어야겠다고 결심하길 바랍니다. 마냥 게으르게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슴을 치며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탄식하는 일이 없도록 촌음을 아껴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4. Where(어디에 씨를 심어야 하는가)
싹이 날 수 있는 토양에 심어야 합니다. 작물은 저마다 좋아하는 토양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수박은 사토(沙土)를 좋아하고 벼는 식토(埴土)를 좋아합니다. 벼를 물이 쑥쑥 빠져버리는 이른바 ‘시루논’에 심어서는 헛수고만 하는 셈이 되고 맙니다.

투자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전한 곳에다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완전히 안전한 투자처는 없습니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주식이 정크본드가 되는 바람에 한평생 알뜰살뜰 힘들여 모아놓은 재산이 한 순간 휙 날아가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한 투자는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우리가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재(財)테크를 하듯이 인생에 있어서도 ‘생(生)테크’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생을 어떻게 불려나갈 것인지를 진중하게 생각해야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5. How(어떻게 심어야 하는가)
시편 126:5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미처 기대하지 못한 해방의 기쁨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씨를 뿌려놓기만 하고 정성스레 가꾸지 않으면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씨를 뿌릴 때도 가꿀 때도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중국의 대학자인 사마온공에게 그의 제자가 5만 자가 넘는 한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글자를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자 사마온공은 정성 성(誠)자를 추천해주었다고 합니다. 텃밭이라도 일궈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제 때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합니다. “곡식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그저 건성건성 때우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이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6. Why(왜 심어야 하는가)
파종의 시기가 있듯이 수확의 시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인생을 결산해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나 므나의 비유가 이것을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일결산, 월말결산, 연말결산을 하듯이 인생결산의 때가 틀림없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아무렇게나 엄벙덤벙 살아서는 안 됩니다. 육체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종말뿐만 아니라 역사의 마침표(오메가 포인트)가 찍히는 우주적인 종말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인생 성적표를 제출해야 합니다. 영생은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지만, 상급은 다릅니다. 상급은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쌓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집짓는 비유를 통해 이 진리를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허접하게 집을 짓는 자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양질의 집을 짓는 자에게 주어질 상급은 분명히 차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종말 때 주어질 상급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이 ‘일한 대로’ 상급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때로 선한 일을 하다가 실망할 때도 있을 것이나 그때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 모두 “파종과 수확의 6하원칙”을 잘 기억하여 열심히 심고 공들여 가꾸어 영육간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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