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
- 시옷(ㅅ)으로 시작하는 7개의 단어 -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정작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게 그리 쉽지 않음을 늘 경험하곤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말씀들도 있고, 또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의 성도들은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일일이 하나님의 뜻을 본인 스스로 분별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아 혼란스러울 때가 왕왕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로마서 12:2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 동안 목회하면서 목사로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을 함께 나누어보려고 한다. 시옷(ㅅ)으로 시작하는 단어 7개로 정리해보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머릿속으로 암송하기가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성경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 오늘날 제2의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외치는 자들이 있지만, 종교개혁이란 한 마디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때로는 “이는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언명한 부분들도 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의 말씀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밝혀져 있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결정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는 몇 가지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적용해서 판단하는 길밖에 없다.

2. 성령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며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고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로마서 8:26-27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아시아 전도를 중단하고 유럽 전도의 문을 열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감화에 민감하게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내 뜻과 맞지 않는다고 성령님의 감동감화하심을 무시해버린다면 그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요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순종

예수님은 요한복음 7:17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순종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뜻을 보여주시지 않는다. 설령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다 해도 그대로 행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소원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소원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빌립보서 2:13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계속적으로 갈망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선교사의 비전을 주시고 계속해서 도전하신다면 선교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순간적인 감정을 지속적인 소원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5. 상황

하나님의 뜻은 때로 우리의 삶의 환경과 상황을 통해 나타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내가 처한 삶의 환경, 나의 재능, 심지어 나의 신체적인 조건 등 나의 환경을 통해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인도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항상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뜻인 경우에는 모든 일이 순적하게 잘 풀려나가며 마음의 평안도 함께 깃든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주인의 며느리감을 구하기 위해 멀리 하란으로 갔을 때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착착 성사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해 주셨던 사건이 한 가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절대금물이다.

6. 사람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때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반듯하게 사는 분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멘토링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깔뱅(칼빈)과 윌리암 파렐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1536년 8월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신학자요 목회자인 깔뱅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도중에 제네바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접한 파렐은 직감적으로 그가 바로 제네바 개혁운동의 적임자라는 확신이 들어 그를 만나러 갔다. 파렐은 체면불구하고 그에게 제네바 개혁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깔뱅은 완곡하게 고사했다. 연로한 백전노장 파렐의 피맺히는 강청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자신의 계획만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생사를 넘나들며 개혁의 현장을 누볐던 파렐은 마지막 경고를 하게 된다. 만일 깔뱅이 끝까지 제네바로 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요나처럼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결국 깔뱅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싶어 자신의 계획을 접고 제네바 개혁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고, 엄청난 업적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조언이나 심지어 경고를 통해서도 나타날 수도 있다는 좋은 실례이다.

7. 상식

신학교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이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생각나곤 한다. “목회는 상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앙과는 동떨어진 극히 인간적인 교훈인 것 같이 들리지만 세월이 갈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씀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이 상식을 초월하는 영역들로 가득 차있다는 것은 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앙생활은 상식적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은 꼭 필요할 때에는 해 그림자도 뒤로 돌리시고 태양도 멈추시고 홍해도 가르시는 비상섭리로 역사하시지만 보통 때에는 평상섭리로 역사하신다. 그래서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게 마련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스스로 양식을 구할 수 있게 되자 만나의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자칫 비상식적인 행태가 마치 신앙적인 것인 양 착각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상 시옷으로 시작하는 7개의 키워드를 나열했지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어느 한 가지에만 의존하지 말고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하나님의 뜻에 보다 가까이 근접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솔직히 구체적인 일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분별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의 근사치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나쁜 시옷’이 있다. 바로 ‘사심’이다.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잘못된 신앙을 우리 모두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가령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기도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며 하나님의 결재를 고집스럽게 요구한다면 그것은 기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하나님의 처분에 온전히 내어맡길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자동차의 기어로 비유하자면, 기어를 중립상태(N, Neutral)에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