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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모든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라는 의미를 가진 사자성어입니다. “만일 당신이 나의 입장이 된다면”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If you were in my shoes"라고 표현합니다. 문자적으로는 ”당신이 만일 내 신을 신고 있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런 표현이 나왔는지 늘 궁금했는데, 우연히 어떤 글을 읽다가 그 내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 북미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사슴 가죽으로 만든 모카신(moccasin)이라는 신을 신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발은 뒤축과 굽이 거의 없는데다가 밑창까지 얇아 험한 길을 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왜 그렇게 느림보 걸음을 걷느냐고 몰아세운다면 그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면 평소에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점에서 역지사지는 배려(配慮)와 맥이 닿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려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아내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아내는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7은 남편들에게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weaker partner)이므로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연약하지만 아내는 ‘더’ 연약한 자이므로 그 점을 고려해서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대 초에 출판되어 판을 거듭하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배려』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한상복 씨가 소설 형식을 빌려 쓴 이 책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한 회사에서 일하는 여러 다양한 사원들을 등장시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얼핏 보기에는 바보스러운 짓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로 성공의 열쇠라는 메시지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 서두에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란 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정서발달장애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아스퍼거를 사회적 의미로 확대시켜 ‘사스퍼거(Social Asperger)’라는 신개념을 창안해냈습니다. 즉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한 사람, 한 마디로 사회성이 결여된 이기주의자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스퍼거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위’는 회사에 수석으로 입사해 고속승진을 계속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리 대상으로 지목받는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혼란에 빠집니다. 게다가 아내는 자기밖에 모르는 남편의 태도를 견디다 못해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버리고 급기야 이혼서류를 보내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자기밖에 모르던 ‘위’는 갑작스레 닥쳐온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지혜를 터득한 몇몇 선배 사원들로부터 이 모든 상황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으며, 해결책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갑니다. 마침내 그는 경쟁만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나누며 배려하는 공존의 삶이야말로 모두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Win-Win의 삶이라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지혜를 터득한 그는 이제 이것을 그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위기에 처한 회사도 살려내고 자신도 살리고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망가진 가정도 회복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매우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다각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본다면, 그는 그 당시 그리스‧로마(Greco-Roman)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과 관련해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우상제물을 먹는 문제와 관련해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에서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믿음이 약한 자들에 대해 배려할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3)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바울처럼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는 우상은 한낱 가공적인 신일 뿐이며, 따라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또한 그저 하나의 음식물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어도 무방하지만, 아직 그런 확고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자칫 양심에 거리낄 소지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 자신의 자유를 유보하고 심지어 포기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이타적인 배려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면 평생 고기(육류)를 먹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신의 심정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죄성을 타고난 인간은 본성상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의 시조인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에 기초하여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이기적인 생각과 행동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이 세상의 보편적인 법칙이요 행태입니다. 토마스 홉스가 말한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상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태도를 극복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상생의 원리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무인도에 살지 않는 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 천국과 지옥은 자기 스스로를 먹일 수 없는 긴 숟갈과 긴 젓가락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로 비유되곤 합니다. 서로 자기만 먹으려고 하다가 결국 아무도 먹지 못하는 곳이 지옥이요, 서로 상대방에게 먹여 줌으로써 모두가 흡족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생의 원리입니다. 배려는 어떻게 보면 남을 위하는 동시에 결과적으로 나도 위하는 상생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남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사소한 배려들이 하나하나 쌓여 인생의 커다란 성공을 일궈낸다는 소중한 진리를 늘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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