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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1)


12월 둘째 주일은 성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지키는 성서주일(Bible Sunday)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성경을 더욱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교회의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이제 성서주일을 맞아 성경의 중심주제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중심주제는 두 말할 것도 없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들의 메시지의 중심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Ιησούς Χριστός ἐστιν”(Jesus is Christ)이었는데, 여기에서 be동사에 해당하는 ‘ἐστιν’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점차 ‘Ιησούς Χριστός’(Jesus Christ)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서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메시아(구세주)라는 칭호입니다. 마치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주일 바로 전주일은 대강절(待降節/Advent) 또는 대림절(待臨節)입니다. 예수님의 강림(降臨)을 기다리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대강절은 초림의 예수님을 회상하며 재림의 주님을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성서주일이 대강절기 가운데 들어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게 생각될지 모르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대강절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고 성경의 주인공도 예수님이시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이상하기는커녕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46)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을 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신 성경은 물론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다”라는 말씀은 모세 오경이 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세 오경만이 아니죠. 사실은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25-27)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리고 부활 후에 제자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신 후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44-4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가리킬 때 ‘율법과 선지자들’이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으로서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하셨습니다(마태복음 7:12, 마태복음 22:40).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율법(모세오경)이었고, 그 다음이 선지서(예언서)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선지서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예언서들과 함께 역사서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시편을 중심으로 한 ‘성문서’(Holy Scriptures)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인용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 그리고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사실상 구약성경 전체를 일컫는 히브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라는 이름 자체는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같은 의미 즉 ‘구원’을 뜻하는 ‘여호수아’나 ‘호세아’와 같은 이름들은 등장하지만 우리가 믿는 바로 그 ‘예수’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출애굽기의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님의 표상(表象)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할 것 없이 처음 난 초태생은 모조리 죽이는 대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대로 1년 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랐고,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 양은 장차 우리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실 예수님을 그림자로 미리 보여주는(pre-shadow) 예표(豫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레 16장에 보면 대속죄일의 규례가 기록돼 있는데, 여기에 나오는 두 염소도 장차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실 예수님의 표상(表象)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Yom Kipper라는 절기를 지키고 있는데, 이 절기가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 아론은 염소 두 마리를 취하여 제비를 뽑습니다.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하여’, 또 한 염소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를 뽑은 후에 ‘여호와를 위하여’라는 제비에 뽑힌 염소는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속죄소 위에 뿌려 백성의 죄를 사하는 의식을 베풉니다. 이 때 대제사장은 반드시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만일 대제사장이 피 없이 그냥 들어가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즉사하게 됩니다. 그 만큼 지성소는 엄위한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은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록 대제사장일지라도 죄를 속하는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사셀을 위하여’라는 제비에 뽑힌 염소는 산 채로 두었다가 대제사장 아론이 그 머리 위에 두 손으로 안수한 후에 광야로 내보냅니다. 두 손으로 안수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와 불의를 그 염소에게 옮기는 것(전가)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예수님을 미리 그림자로 보여주신 예표적인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는 분이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분에게 전가(轉嫁, transfer)시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안수한 후에 미리 지정해놓은 사람을 시켜 그 염소를 멀리 광야 무인지경에 갖다 버립니다. 그래서 다시는 못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는 우리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인격(person)과 사역(work)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이 도처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숨겨진 그림의 편린(片鱗)들을 모아 퍼즐을 완성할 때 예수님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공부를 통해 숨겨진 예수님의 모습들을 찾아내고 그 모든 조각그림들을 잘 꿰맞춰 예수님의 전모(全貌)를 발견함으로써 그 분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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