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목회는 상식으로 하는 거야!”

제가 한국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저의 고등학교 선배이시며, 저의 모교인 장로회신학대학(광나루 신학대학)에서 7년 반에 걸쳐 총장을 역임하시고, 제가 속해있는 해외한인장로회(KPCA) 교단 직영 신학교인 LA미주장신에서 총장을 역임하신 바 있는 서정운 총장님은 소탈하고 격의 없는 성품 때문에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신 분입니다. 이 분은 수년간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사역하시다가 장신대에서 선교학을 강의하셨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후학들에게 목회에 유익한 조언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 중 두 가지가 늘 머리에서 맴돌곤 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목회의 80%는 인간관계이다.”라는 말씀이고, 또 한 가지는 “목회는 상식으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중시하셨던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저의 목회방침 세 가지 중의 하나로 ‘인화목회’(人和牧會)를 내세우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썩 잘했다는 평가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딴은 노력한다고 했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임을 절감하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인간관계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쌍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피차간 잘 해야 원만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목회방침의 하나로 인화(人和)를 강조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매우 인본주의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믿음도 인간관계가 어그러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늘 경험하면서 그 교수님의 말씀이 풍부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깨닫곤 했습니다.

‘상식으로 하는 목회’도 얼핏 신앙과는 아주 동떨어진, 아니 어쩌면 정반대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이 말씀 또한 깊은 경륜 속에서 빚어진 ‘원포인트 레슨’이었음을 확인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회행정 일반에 관련된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성경에는 온통 상식을 초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수많은 기적 스토리들이 다 상식을 초월하는 내용들입니다. 기적에는 무(無)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사건을 위시해 열 가지 재앙, 홍해 도하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반석에서 물이 나온 사건, 태양이 멈춘 사건,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사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 오병이어의 기적 등 소위 ‘자연 기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행했던 소위 ‘치유 기적’ 즉 불치병자들을 고치신 기적, 죽은 자들을 살리신 기적 등등 신구약성경은 온통 기적의 사건들로 도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기적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행하시는 이른바 ‘비상섭리’(非常攝理)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분이 평상시에 행하시는 ‘통상섭리’(通常攝理)에 비하면 아주 제한된 수(數)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통상섭리를 보여주는 구절 하나를 소개해봅니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말할 때 “만일 태양이 서쪽에서 뜬다면...”과 같은 식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만일 태양이 날마다 제 멋대로 들쭉날쭉 운행한다면 이 세상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연계를 정상적으로 운행하십니다. 그리고 병이 들면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낫게도 하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사나 약의 도움을 통해 고쳐주십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에 의사라는 직업이 필요가 없겠지요. 이러한 생각을 자칫 믿음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입니다. 의사의 의술과 약도 다 하나님의 일방은총(general grace)에 속합니다. 일반은총은 믿는 자나 불신자나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임하는 은총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햇빛과 비를 예로 들어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설명하시기도 했습니다.

지금 한국은 법무장관인 조국 사태로 인해 무척 소란스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천명했습니다. 누가 연설 원고를 썼는지 정말 함축적이면서도 멋진 문장이라고 늘 생각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의 혼란상을 멀리 이국땅에서 지켜보면서 이 연설문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건 비단 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문 대통령이 제시한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 이 세 가지를 한 단어로 뭉뚱그린다면 ‘상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 정권이 그토록 강조하며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렀던 ‘적폐청산’은 달리 표현하자면 상식을 벗어났던 잘못된 행태를 척결하고 개혁하자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적폐’(積弊)는 인습(因習)에 의해 오랫동안 쌓여오면서 굳어져버린 폐단을 의미합니다. 마치 와이셔츠에 진때가 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진때는 심지어 기름세탁을 해도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잘못된 행태들이 마치 상식인 양 통용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적폐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비상식적인 행태들이 차곡차곡 켜켜이 쌓이다보니 이제는 마치 그것들이 상식인양 착각을 일으키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상식을 “깊은 고찰을 하지 않고서도 극히 자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상식이란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다.”라고 했습니다. 상식(常識)은 ‘common sense’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과 행동이 ‘상식’이고,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상식적인 사회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비상식(非常識)을 넘어 몰상식(沒常識)한 사회상도 심심찮게 접하게 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에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술회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 후보 시절에 ‘상식이 통하는 사회,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역설했습니다. 민주당의 문재인 대통령도 이미 후보 시절에 ‘정의가 숨 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힘차게 외쳤고, 안철수 후보도 일찍이 서울대 교수시절에 그의 저서에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이루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성정(性情)이 다 다르지만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이것이 정상적인 일반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상식’임을 여실히 방증(傍證)하고 있는 것입니다.

논어에 ‘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자신의 신분이나 직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면 저절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바라건대, 한국사회도 그리고 한국교회도 상식을 회복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소원하며 한 가닥 기도의 줄을 보태렵니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